1678년 11월 7일, 可齊 金怡가 상대방이 보내주신 과일을 받고 감사함을 전하기 위해 松坡 金輝世에게 보낸 편지.
1678년 11월 7일, 可齊 金怡가 상대방이 보내주신 과일을 받고 감사함을 전하기 위해 松坡 金輝世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이는 우선 편지 서두에서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있다. 요사이 상대방이 수레타고 왕림하셨을 때에 여러 날 가르침을 받았으나 계속해서 손님맞이로 번거로워 한 번도 따르지 못했으니 자신의 마음이 매우 섭섭함은 말씀드리기가 어려움이 있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 뒤에 인편으로 말미암아 상대방이 용궁관아로 돌아간 뒤에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관의 겨를이 넉넉하여 일상생활이 평안하고 여유로움을 알게 되니 기쁘고 위로된다고 전한다.
이어 김이는 이 편지를 쓴 목적을 적고 있다. 자신은 봉화의 며느리가 보러왔으나 아직 풍속에 따라 만나는 것을 면하지 못했으니 궁가를 두고 설치함이 모든 도구가 땅을 쓸 듯이 없어 자못 염려하고 있던 중 상대방이 보내주신 과일이 모두 이 지역에서 생산된 것이 아닌데 절실하게 쓸 수 있었다며 감사함을 전하고 있다. 또한 상대방이 그 때에 관가가 일이 많아 군대를 점고하고 환곡을 독촉하여 장부와 문서를 정리한다고 바쁜 즈음에도 불구하고 멀리 밖에서 돌아봐서 생각해 주는 마음을 입었으니 감사하고 행복한 자신의 마음을 편지로는 다 쓰기가 어렵다고 전한다.
光山金氏禮安派譜에 의거하면, 이 편지의 발급자인 김이(1631~1700)는 자는 美仲, 호는 可齊, 본관은 광산이며, 초명은 磅이다. 左承旨에 추증되었다. 그의 부친은 龍門 金光輔(1587~1634), 조부는 近始齋 金垓(1555~1593), 증조는 挹淸亭 金富儀(1525~1582)이다. 그의 형은 金愐(1611~1688), 아우는 金慬(1639~1714)이다. 김이는 수취인에 대해 자신을 '族姪'이라고 하며 상대를 '叔主'로 표현하였다. 또한 피봉에 '龍宮東軒 侍下人'이라고 기록된 것을 통해 수취인이 용궁 현감을 지낸 이력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위의 단서들과 이 문건이 '광산김씨 설월당' 문중의 문건임을 감안하면 수취인은 雪月堂 金富倫(1531∼1598)의 손자이자 溪巖 金坽(1577∼1641)의 아들인 송파 김휘세(1618~1690)로 추정할 수 있다.
光山金氏禮安派譜에 의거하면, 김휘세는 자는 應時, 호는 송파, 본관은 광산이다. 遺逸로 천거되어 敎官에 임명된 이후 工曹佐郞 ‧ 용궁 현감 등을 역임한 이력이 있다.
또한 선성읍지�에 김이의 부친인 김광보가 예안 출신으로 생원시에 입격한 이력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통해 김이의 거주지를 예안으로 추정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光山金氏禮安派譜』,
『선성읍지』,
1차 작성자 : 서은주, 2차 작성자 :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