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8년 9월 21일, 洪錫이 혼구용품을 부탁하기 위해 金輝世에게 보내는 편지.
1678년 9월 21일에 洪錫이 혼구용품을 구하기 위해 金輝世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내용으로는 우선, 종이가 없어서 질이 좋지 못한 종이에 편지를 적어 보내는 것이 부끄럽다는 말로 시작하여 몇 해 동안 서로 만나지 못하여 상대방이 자신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상대방이 수령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몹시 기쁘지만 집안형편이 어려워서 하인을 보내 축하하지 못하는 사정에 대해 말하고, 가까운 곳에서 수령을 지내고 있지만 문지기를 통할 길이 없어서 人事에 어두운 사람이 되어버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였다. 늙은 자신은 죽을 날이 머지않아서 말할 만한 것이 없다고 하면서 뒤이어 이 편지를 쓴 이유에 대해 자세히 적고 있다. 집안 자손들의 혼인이 계속 이어져서 며느리와 사위를 맞이할 날짜가 임박했지만 평소 가난한 집에서 혼구를 갖추기 어렵다고 하면서, 이부자리·빚 넣는 통·가죽신 등은 더욱 마련하기 어려운 형편을 토로하였다. 이어서 상대방이 있는 龍宮의 사정도 어려운 줄 알지만 물품을 구해줄 수는 없는지를 물으며 부디 자신의 형편을 생각해서 도와달라고 하였다. 만약 물품을 구해준다면 하인을 보내 받아올 생각이라고 하면서 거듭 부탁의 말을 전하였다.
이 편지의 발급인인 홍석(1604~1680)의 자는 公敍, 호는 遜愚 · 晚悟, 시호는 貞敏, 본관은 榮州이다. 부친은 洪敬昭이고, 金集과 金尙憲의 문인이다. 병자호란 뒤에 太白山 아래 春陽에 은거하였으며, 洪宇定·姜恰·沈長世·鄭瀁과 함께 太白五賢으로 불리었다. 孝宗 즉위 후 世子翊衛司司禦·縣令 등을 역임하였고, 저서로는 喪祭要錄 · 禮記類會 · 遜愚集이 전한다.
편지의 수급인은 이 편지의 피봉 부분을 살펴보면 확인할 수 있다. 발급인이 상대방을 龍宮鈴下史와 應時兄이라고 적었는데, 이를 통해 수급인은 龍宮縣監을 지냈으며 자가 응시인 金輝世(1618~1690)라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김휘세의 호는 松坡, 본관은 光山이다. 부친은 金坽이며, 거주지는 安東이다. 품행이 독실하여 사림의 중망을 받았으며, 工曹佐郞·龍宮縣監을 역임하였다.
이 편지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내용 중에서 상대방이 현감으로 부임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부분과 상대방이 있는 용궁의 사정이 어려운 것은 알지만 자신의 형편을 생각해서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부분을 통해서 당시에 수급자 김휘세는 용궁현감으로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발급인 홍석도 용궁 인근의 수령직을 지내고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혼례에 쓸 이부자리, 빛 넣는 통, 가죽신 등을 구해달라고 언급한 부분에서 그 당시 혼례에 사용되었던 혼구의 종류를 확인할 수 있고, 자신이 구하기 어려운 물품은 부탁하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던 시속을 살펴볼 수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光山金氏禮安派譜』,
1차 작성자 : 서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