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7년 9월 6일 李溟翼이 琴聖徽 거처의 모임에 함께 가자는 내용으로 광산김씨 설월당에 보낸 편지.
1677년 9월 6일 李溟翼이 琴聖徽 거처의 모임에 함께 가자는 내용으로 광산김씨 설월당에 보낸 편지이다.
편지는 안부 인사로 시작한다. 상대방을 매우 그리워했는데, 보내준 편지를 받으니 정답게 마주하는 것 같아 감격스럽고 위로됨이 지극하다고 했다. 지난번 상소에서 본인의 사정을 진달하지 못하여 편안하지 않았는데, 소장을 올려 관직에서 물러나길 바란다고 하였다.
이번 모임에 고삐를 나란히 하여 함께 갈 수 없어 한스럽지만 열흘 후의 和叔 琴聖徽 거처에서 약속된 모임에는 상대방과 회포를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상대방에게 가는 날짜를 인편으로 미리 알려주면 함께 가고자하였다. 본인과 함께 가면 역참마다 말을 바꿔 타는 것에 혐의 될 것이 없다고 알려왔다. 그 밖에 李行政이라는 인물이 봉화 수령으로 임명되었는데, 누구인지 궁금해 하였다.
추록은 두 가지 내용이다. 첫번째는 조카 동[이동표]과 자신의 아들이 과거에 합격한 사실을 적었다. 상대방도 함께 축하해줄 것으로 여겨 아뢴다고 했으며, 장원은 李簠라고 했다. 두 번째 추록에는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告廟之論'을 정지한 사실을 적었다. 이는 1674년(현종 15) 효종의 비 仁宣王后의 승하 시에 효종을 적자로 간주한 남인의 주장이 채택되자, 기해예송에서 효종을 서자로 간주하여 서자복을 입었던 것을 적자복으로 입은 것으로 고쳐서 고묘해야 한다는 논의를 일컫는 것으로 짐작된다.
발급자 이명익(1617∼1687)의 본관은 진성, 자는 萬里, 호는 反招堂이다. 李之馨의 아들로 예천의 호명에서 출생했다. 1649년(인조 27) 문과 급제하여, 정언, 대사간, 충청도 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1915년에 간행된 2권 1책의 『反招堂先生文集』이 있다. 아들은 李學標이다.
이 편지는 이동표와 이보가 같은 해 과거시험에서 나란히 합격했던 사실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이동표와 이보는 모두 1677년에 과거에 합격했으나 과거응시생들의 난동으로 모두 파방되었다. 이로 인해서 문과방목에서는 그들의 기록을 확인할 수 없는데, 이 편지를 통해 두 인물이 과거에 합격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