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4년 3월 16일, 黃橏이 사위를 보내줄 것을 청하기 위해 金輝世에게 보내는 편지.
1674년 3월 16일, 黃橏이 사위를 보내줄 것을 청하기 위해 金輝世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먼저 편지 내용으로는, 일전에 보낸 두 통의 안부편지는 모두 답장을 받지 못하여 아직까지 섭섭하다고 하면서 늦봄 중 상대방의 안부에 대해 물으며 그리운 마음을 전했다. 이어서 상중에 보잘 것 없이 겨우 지탱하면서 지내고 있는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사위와 작별한지 이미 오래되어서 만나보고 싶지만 상대방의 의사가 어떠한지 몰라서 감히 부탁하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전하면서 편지를 끝마치고 있다. 이 편지에는 오랫동안 보지 못한 사위를 그리는 장인의 마음이 담겨 있는 편지로, 자신의 뜻을 전하는 동시에 사돈의 의사를 조심스레 물어보고 있다.
편지의 발급인 黃橏은 본관이 檜山이고, 부친은 主簿 黃益淸이다. 곧 김휘세와는 사돈지간으로, 편지 중에 보내달라고 요청한 사위는 김휘세의 아들 金厚昌(1655~1697)을 가리킨다. 김후창은 자가 重夫이고, 훗날 嘉善大夫 戶曹參判에 증직되었다. 이 편지를 작성할 당시 그는 20세로 이미 황전의 여식과 혼인한 상태였는데, 훗날 宣城金氏 金瑞河의 여식과 재혼하였다.
피봉에는 수취인으로 '金院長宅'이라고 적혀있는데, 이를 통해 수취인은 편지를 발급한 시기에 도산서원 원장직을 지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광산김씨 설월당 문중 인물 중에서 이 시기에 도산서원 원장직을 지냈던 인물을 찾아보면 金輝世(1618~1690)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수취인 김휘세는 자가 應時, 호는 松坡, 본관은 光山이다. 부친은 金坽이며, 거주지는 安東이다. 품행이 독실하여 사림의 중망을 받았으며, 工曹佐郞·龍宮縣監을 역임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光山金氏禮安派譜』,
1차 작성자 : 서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