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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0년 윤심(尹深)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F.1670.1100-20090831.00282570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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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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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윤심, 김○○, 김○○
작성지역 서울특별시
작성시기 1670
형태사항 크기: 33 X 41.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오천 광산김씨 설월당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670년 윤심(尹深) 서간(書簡)
지난 해 김생으로부터 김진사와 생원 형제가 어버이의 대상을 치러 복을 변제한 지도 오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분수와 도의를 다하지 못하여 유감스럽다고 하였다. 형들의 기거는 편안한지, 자제들은 어떻게 자랐는지도 물었다. 윤심1669년 겨울 부친의 묘소 이장을 마무리했다고 했다. 무덤이 불길하여 자손이 쇠락할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보고 싶지만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몸도 쇠약하여 앞으로의 만남을 기약할 수 없어 그리움만 더할 뿐이라고 하였다. 李仲思가 서울에서 객사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山陰에 있을 적에 형과 더불어 교분이 두텁다고 했으니 애도를 표한다고 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光山金氏禮安派譜』,
1차 작성자 : 김명자

상세정보

1670년 윤2월 11일, 舊弟 懲庵 尹深이 金進士와 生員 형제에게 보낸 안부 편지
1670년 윤2월 11일에 舊弟 懲庵 尹深이 金進士와 生員 형제에게 보낸 안부 편지이다.
이 편지는 윤심이 김진사와 생원 형제에게 안부를 전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난 해 金生으로부터 형들이 어버이의 대상을 치러 복을 변제한 지도 오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분수와 도의를 다하지 못하여 유감스럽다고 하였다. 형들의 기거는 편안한지, 자제들은 어떻게 자랐는지도 물었다. 윤심1669년 겨울 부친의 묘소 이장을 마무리했다고 했다. 무덤이 불길하여 자손이 쇠락할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보고 싶지만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몸도 쇠약하여 앞으로의 만남을 기약할 수 없어 그리움만 더할 뿐이라고 하였다. 李仲思가 서울에서 객사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山陰에 있을 적에 형과 더불어 교분이 두텁다고 했으니 애도를 표한다고 하였다.
편지의 앞부분에는 일반적으로 계절, 날씨 등과 안부를 묻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편지는 수신자 김진사와 생원 형제의 부모상 소식을 뒤늦게 듣고 도의를 다하지 못한 아쉬움을 먼저 나타낸 뒤에 김진사를 비롯한 가족의 안부를 묻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에는 편지의 일반적인 양식인 '伏惟僉情亮', '謹拜上狀' 등으로 끝냈다. 편지의 작성 월일은 '閏月 十一日'로 표기되어 있는데, 1670년의 '閏月'은 2월달이다.
이 편지의 발급인인 윤심(1633~1692)의 자는 玄通, 호는 懲庵, 본관은 坡平이다. 증조부는 도승지 尹覃茂이고, 조부는 觀察使 尹知敬이다. 부친은 參判 尹鏶이며, 知中樞府事 金藎國의 딸을 부인으로 맞이하였다. 1660년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弘文館正字가 되고 副校理, 副修撰, 吏曹佐郞을 거쳐서 1674大司諫이 되었다. 다음해 京畿道觀察使가 되었으며, 1679개성유수를 역임하였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西人이 추방당하자 工曹判書로 기용되고, 이어 兵曹判書를 거쳐 知敦寧府事에 이르렀다. 隸書에 뛰어났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光山金氏禮安派譜』,
1차 작성자 : 김명자

이미지

원문 텍스트

1670년 윤심(尹深) 서간(書簡)

金進士 生員 僉侍史。
情兄 謹拜上狀。
去年因金生。始聞
僉兄已經終天之痛。順變且久。遠地人事。無異各
天。環顧分義。嘆恨無窮。不審年來。
僉兄起居如何。兩家蘭玉皆已長成成材耶。仰止一
念。何嘗朝夕已也。弟。先人宅兆不吉。子孫零悴云。
故去冬已行遷塋之禮。而寃痛益復新矣。方爲嚴
痘所驅逐。朝夕竄伏。而所幸者老親氣息支安耳。
從兄在世之前。每思委拜。用酬平生之願。今其已矣。痛
恨何及。道路脩遠。各在衰境。此後相逢。固無其期。
未化之前。只是相思之日耶。東望咨嗟。有懷如海。
李仲思客死京邸。念來短氣。在山陰時。自言與
兄分厚。故玆致唁耳。餘懷萬萬。非紙筆所旣。惟祈
倍萬保嗇。以副遠誠。伏惟
僉情亮。謹拜上狀。
庚戌 潤月 十一日。 舊弟 尹深

眼昏倩草。悚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