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2년 11월 3일 任屹이 金坽에게 금의환향에 나아가지 못했고 축하 편지도 늦어지게 된 것을 사과하는 편지
1612년 11월 3일 任屹이 金坽에게 금의환향에 나아가지 못했고 축하 편지도 늦어지게 된 것을 사과하는 편지이다.
거듭 축하하는 말을 하고, 이어 건강이 어떤지 염려가 되며 전의 편지는 반가워서 뵌 것 같다고 첫 인사를 하였다. 자신은 멀리 있고 오래 병을 앓아 금의환향에 나아가지 못했고 축하 편지도 늦어져 매우 부끄럽다고 심정을 전했다. 자신은 근래 집안에 제사가 있어 문을 닫고 조섭하며 노비도 분주하여 인편으로 편지를 붙여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끝인사를 덧붙여 마무리 하였다.
발신자 임흘(1557~1620)은 본관이 豐川, 자는 卓爾, 호는 龍潭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柳宗介 ‧ 尹欽信 등과 힘을 합쳐 왜적을 막은 공으로 典獄參奉을 제수 받았으나 부임하지 않고, 청량산 기슭에서 학문에 몰두하였고 저서로는 『龍潭集』이 전한다. 수신자 김령(1577~1641)은 본관이 光山, 자가 子峻이고 호는 溪巖이다. 1612년 增廣試 병과로 문과에 급제하여 承政院注書를 제수 받았으나 광해군의 난정을 보고 귀향하였다가 인조반정 후에 直講 · 持平을 역임하였다. 병자호란 때 예안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가산을 털어 의병을 지원하였으며 저서로는 『溪巖集』이 전한다.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