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년 5월 15일, 金富倫이 달구경을 하자는 초청에 나가지 못한 이유와 시를 보내기 위해 보낸 편지
1596년 5월 15일에 金富倫(1531~1598)이 달구경을 하자는 초청에 나가지 못한 이유와 시를 보내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일전에 달구경을 하자는 초청을 받아 어제 술을 가지고 나아가려고 했지만 柳家의 요청에 나아가는 것 때문에 사양했다고 하였다. 근래에 자신은 연고가 있어서 형세상 사례인사를 하러 달려가지 못하기 때문에 술 상자를 보내고 6언 1수를 써서 존좌의 궤하에 올린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덧붙여 썼다.
보내는 靑州從事를 [爲送靑州從事]
烏有先生으로 만들지 마오 [莫成烏有先生]
만약 地主가 방문하게 된다면 [如逢地主見訪]
반병의 남은 술을 이을만하리 [可繼半壺餘淸]
시에 이어서 위와 같은 시를 지은 이유를 설명했다. 章質夫가 술 6병을 동파에게 보냈는데 편지는 왔지만 술은 도달하지 않았기에 동파가 시로 희롱하기를, "靑州六從事가 烏有一先生이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라고 하였고, 어제 온 편지에서는 "집에 반병의 술이 있는데, 오늘 그대와 대작한다면 내일 어떻게 성주를 대접하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말구에 희롱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당귀채 한 묶음도 올린다는 추신도 덧붙였다.
김부륜이 지은 시 내용 중에 나오는 靑州從事는 '좋은 술'을 뜻하고, 烏有先生은 '무엇이 있느냐?'는 말로 '실존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는 어떤 승려가 蘇軾에게 술 여섯 병을 선물했는데, 열어보니 빈 병뿐이었으므로 소식이 "어찌 청주의 여섯 종사가 변하여 오유선생이 될 줄을 생각했겠는가?[豈意靑州六從事, 化爲烏有一先生.]"라는 시를 지어 보낸 데에서 나온 말이다.
발신자 김부륜은 본관이 光山, 자가 惇敍, 호가 雪月堂이다. 아버지는 金綏이고, 李滉의 문인이다. 1555년 식년시 생원에 합격하였고, 遺逸로 천거되어 돈녕부봉사, 동복현감, 봉화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만년에 관직에서 물러난 뒤 향리에 雪月堂을 짓고 후진을 양성하였고, 저서로는 『雪月堂集』이 있다.
편지 연월일 뒤에 적힌 玄洞은 당시 김부륜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그는 1593년에 봉화현감에 임명되고, 1594년 가을에 관직에서 물러났다고만 기록되어 있을 뿐 그 이후 더 이상 관직에 임명된 흔적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편지가 작성된 지역이 정확히 어느 곳의 현동인지 알 수 없다.
1차 작성자 : 서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