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9월 29일에 金富倫이 奉化假守로 부임한 뒤의 상황을 전하고 자신이 가지 못한 사정과 두 곳에 생긴 사단에 대한 걱정을 미상의 수신자에게 전하는 편지.
1592년 9월 29일에 金富倫이 奉化假守로 부임한 뒤의 상황을 전하고 자신이 가지 못한 사정과 두 곳에 생긴 사단에 대한 걱정을 미상의 수신자에게 전하는 편지이다.
존체후가 어떤지 묻고 자신은 봉화가수로 이달 보름 후에 부임하니 군무가 번다하여 걱정이라고 하였다. 또 站軍과 支應 하인 등 다수가 도망갔다고 하니 더욱 놀라운데 오래 머물러 양식이 떨어진 때문일 것이라고 하면서 담당자를 가두고 督送할 뿐이라고 하였다.
자신은 관의 일을 조금 처리하면 가려고 하던 즈음에 어제 안동의 金涌이 實守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오래지 않아 관에 도착하면 가수는 상관이 없기 때문에 일부러 가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러나 八莒站의 일은 매우 성가시어 支送하지 못했지만 두 곳에 사단이 생긴 일은 참으로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발신자 김부륜(1531~1598)의 본관은 광산, 자는 惇敍, 호는 雪月堂이다. 李滉의 문인으로 1555년 사마시에 합격, 1585년에 전라도 동복현감으로 부임하여 향교를 중수하고 지방교육 진흥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산을 털어 향병을 도왔고, 봉화현감이 도망가자 가현감이 되어 선무에 힘썼다. 관찰사 金晬에게 적을 막는 三策을 올렸는데 충심이 지극한 내용이었다. 金誠一, 李潑과 도의를 강마하였으며, 만년에 관직에서 물러난 뒤 향리에 설월당이라는 정자를 짓고 후진을 양성하는 데 전념하였다. 『대학』과 『심경』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예학에 대해서도 사우 간에 많은 질의가 있었다. 저서로는 『설월당집』 6권이 있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