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0년 朴簾이 金富倫에게 장례 용품과 제수를 도와주길 부탁하는 내용의 편지
1580년 朴簾이 金富倫에게 장례 용품과 제수를 도와주길 부탁하는 내용의 편지이다.
처음에는 참봉 관직을 띄고 齋所에서 근무하는 상대방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벼슬을 그만두려고 사직 상소를 올린지 며칠째 되었고, 이로 인해 당신에게 오랫동안 인사를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형이 돌아가셔서 발인을 했지만 아직 장례를 않은 상태인데, 장례 일자가 임박하였는데도 여러 제수 용품이 대부분 없어서 고민이라고 하고 있다. 이어서 세면포, 포대 큰 것과 작은 것 한 부를 구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번거롭겠지만 형의 후의만 믿는다는 말로 편지를 맺고 있다.
편지의 피봉은 단봉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편지의 발급자는 본문에 '年弟 簾'이라고 적혀 있고, 겉면 부분에 '朴公簾書'라고 후세에 메모해 놓은 것이 있어 朴簾인 것을 알 수 있다. 박렴(1532~?)은 본관은 潘南이고 자는 守約이다. 부친은 朴誼이고, 생부는 朴詠이다. 1572년(선조 5)에 문과 별시에 병과 5인으로 급제하였다. 편지의 수취자는 겉면에 '金參奉'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 편지의 소장처인 광산 김씨 가문의 인물의 생년과 관직을 통해 추적하면 金富倫인 것을 알 수 있다. 김부륜(1531~1598)은 본관은 光山이고, 자는 惇敍, 호는 雪月堂이다. 안동에 살았으며, 李滉의 문인이고 金誠一, 李潑 등과 교유하였다. 1555년 式年試 2등으로 생원에 합격하였다. 遺逸로 천거되어 集慶殿參奉, 敦寧府奉事 등을 역임하였다. 1585년 同福縣監으로 있을 때 향교를 중수하고 봉급을 털어 서적을 구입하는 등 지방교육 진흥에 공헌하였다. 임진왜란때 가산을 털어 향병을 지원하였다. 만년에 관직에서 물러난 뒤 향리에 雪月堂을 짓고 후진을 양성함. 저서로는 雪月堂集이 전한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1차 작성자 : 명경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