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相健이 故里로 보낸 편지로 자신의 근황을 전하면서 腰院 제사에서의 행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편지
○○년 11월 3일 李相健이 故里로 보낸 편지로 자신의 근황을 전하면서 腰院 제사에서의 행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편지이다.
지난번 葛面에 있을 때 바삐 보낸 몇 자 서신은 보았는지를 묻고, 눈 온 뒤 심한 추위에 상대방의 안부는 편안한지 마을의 전염병은 차츰 덜해지는지 궁금해 하였다. 자신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으나 대단하지는 않아 그대로 맡겨둘 뿐이나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집이 없어 우려가 보통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근황을 전했다. 岳孫이 초시에 합격하였으나 앞에 있는 한 고개가 하늘에 오르는 것 같아 추운 계절에 길을 떠나는 것이 더욱 신경이 쓰인다고 걱정했다. 石川의 편지를 보면 곡절을 알 수 있을 것이나 다만 갈면에서 요원에 이르는 것이 쉽지 않으며, 또 요원 제사는 추운 계절에 흙을 발라 매우 추워 남산의 대를 모두 태워도 조금도 따뜻한 곳이 없다고 하니 며칠 밤을 지내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니 어찌하느냐고 걱정하였다. 이곳은 추위를 핑계 댄다는 혐의가 있어 감히 석천에 알리지 못해 걱정이며 내일 사이에 석천에 가는 인편이 있으면 편지를 부치겠으며 종이 돌아오면 석천의 계획을 전하겠다고 하였다.
갈면은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로 19세기 후기인 1879년경에 재령이씨의 雲棲 李鉉圭가 마을 주위 산에 칡이 많다하여 갈면이라 했다고 한다. 석천은 石川書堂을 가리키는 듯한데, 石溪 李時明(1590∼1674)이 1640년(인조 18)에 네 아들과 같이 석보에 이주하여 樂飢臺에 터를 잡아 석계초당을 짓고 살았는데, 뒤에 자손들과 유림들이 초당을 중건하고 석천서당을 창건하였다. 요원은 현재 英陽郡 石保面 腰院里이다.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