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에게 편지를 받은 날, 龍溪 李世聞이 酉谷의 望記 반환에 관한 일의 경과를 알리고 상대가 빌려주기를 부탁한 靑帳에 대해 직접 빌려 줄 수 없음을 알리기 위해 金進士에게 보내는 편지
상대에게 편지를 받은 날에, 龍溪 李世聞이 酉谷의 望記 반환에 관한 일의 경과를 알리고 상대가 빌려주기를 부탁한 靑帳에 대해 직접 빌려 줄 수 없음을 알리기 위해 金進士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먼저 상대의 편지를 연달아 받아 안부를 확인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병든 상황 등 근황을 알렸다. 본론으로 酉谷에서 望記를 반환하는 일에 관해 이미 서원 하인을 보냈다고 하였다. 그리고 비록 여러 사람들이 연명하여 글을 써서 보내는 것만 못하나 士完이 출타 중이기에 溪上 ‧ 遠村과는 상통할 수 없을 것임을 알렸다. 상대가 요청한 靑帳은 출입하고 주고받는 수고로움 때문에 年前에 마을에 내어주었고, 더러 빌려달라는 사람이 오면 마을에서 약간의 돈을 받고 빌려주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관련 有司의 집안에 역병이 돌아 청장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었기에 빌려주지 못하는 상황을 알렸다.
이 편지의 피봉에는 수취인에 대하여 '金進士'라고 적혀있다. 이 문건이 광산김씨 설월당의 문건임을 감안하면, 같은 집안 문건 가운데 「權思浩가 김진사 君成에게 보내는 서간」, 「李德中이 芝厓 김진사에게 보내는 서간」 등이 있다. 전자의 경우는 자가 군성인 書巢 金台翼(1724~1795)이며 후자의 경우는 호가 지애인 金{糸+夾)(1728~1801)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위의 두 인물 모두 이세문과 비슷한 연배이므로 김진사가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피봉의 봉합처에 착명을 하지 않고 '省式'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봐서는 발급인 또는 수취인 가운데 적어도 한 사람은 상중이거나 복을 입고 있는 상황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服' 또는 '哀'와 같은 관련 문구가 없고, 편지 투식에서 역시 문장 첫머리에 '생식'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 않아 추정 할 뿐이다. 그리고 편지의 후면에는 物目으로 추정되는 문구가 있고, 또 「次洪敬齋竪碣韻」이라는 제목의 7언 율시가 草錄되어 있다. '洪敬齋'는 이 시의 3, 4련에 "壁立公山萬丈臨, 大廈欲傾空隻手"라는 구절을 통해 고려 말 학자였던 洪魯(1366-1392)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를 적은 주체가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편지의 발급인인 이세문(1724~1795)은 자는 汝晦, 호는 龍溪, 본관은 眞城이다. 부친은 李守沉이며 거주지는 安東이다. 1762년 式年試 3등으로 진사에 합격하였다. 이 편지의 피봉에 수취인 보다 후대 사람이 적어놓은 듯한 '李稷山'이라는 용어를 통해 그는 稷山縣監을 지냈던 것으로 알 수 있다. 저서로는 �龍溪遺稿가 있다.
이 편지는 시계방향으로 돌려가며 읽도록 된 回文형식으로 작성되었다. 우측에서 약 둘째 줄 '連獲'에서부터 내용이 시작되어 좌측 방향으로 세로읽기로 내용이 진행되며, 상단 가로로 적힌 부분으로 내용이 이어진다. 마지막에 다시 맨 우측 부분에 발급시기와 성명을 기재하였다. 발급시기로 '卽旋'이라고 되어있는데, 이는 상대에게 편지를 받은 날에 즉시 이 편지를 작성하여 보낸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정확한 연월일을 추정할 수 없다. 그러나 본문에 '楝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楝花風으로 穀雨의 마지막 花信風을 의미한다. 즉 늦봄인 음력 3월로 추정할 수 있다. 약 7번의 擡頭와 隔字를 사용하여 상대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光山金氏禮安派譜』,
1차 작성자 :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