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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김부륜(金富倫)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F.0000.4717-20090831.00282570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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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부륜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형태사항 크기: 48 X 26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오천 광산김씨 설월당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년 김부륜(金富倫) 서간(書簡)
○○년에 김부륜(金富倫)이 성주에게, 노(奴) 만석(萬石)과 관련된 일로 성주에게 뜻을 전하는 편지이다. 자신은 이전에 투탁한 노의 일을 관에 가서 아뢰려고 했으나 설사로 가지 못했다고 하고 있다. 자신의 노 만석은 그 자녀를 삼척부에 몰래 투탁시켰다고 하며 이를 바로 잡아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1차 작성자 : 김인호

상세정보

○○년에 김부륜(金富倫)이 성주에게, 횡노(橫奴) 만석(萬石)과 관련된 일로 설사가 그친 뒤에 나아가 진달하겠다는 뜻을 전하는 편지
○○년에 김부륜(金富倫)이 성주에게, 횡노(橫奴) 만석(萬石)과 관련된 일로 설사가 그친 뒤에 나아가 진달하겠다는 뜻을 전하는 편지이다.
정사를 돌보는 생활이 어떠한지 몰라 매우 그립다고 첫인사를 하였다. 이어 전날 중앙(中央)의 약속은 허사가 되었고 소읍(小邑) 지주도 뜻밖에 바뀌니 사람의 일은 믿을 수 없으니 탄식할만하다고 하였다. 자신은 횡노(橫奴)의 일로 나아가 진달하려 했으나, 설사로 출입할 수 없어 안정이 되면 달려가 회포를 풀겠지만, 늘 술을 많이 마셔 예모를 잃어 미리 두렵다고 하였다. 횡노(橫奴) 만석(萬石)이 그 자녀를 삼척부(三陟府)의 땅에 맡겨 두었는데 부사가 와서 의탁한 것을 기뻐하며 어루만져주었기 때문에 아비는 숨기고 자식은 드러내며 양양한 기색이 있다고 하니 매우 분통하다고 하소연하였다.
발신자 김부륜(金富倫, 1531~1598)의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동서(惇敍), 호는 설월당(雪月堂)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55년 식년과(式年試) 2등으로 생원에 합격하였다. 1585동복 현감(同福縣監)으로 있을 때 향교를 중수하고 봉급을 털어 서적을 구입하는 등 지방교육 진흥에 공헌하였고 임진왜란 때 가산을 털어 향병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만년에 관직에서 물러난 뒤 향리에 설월당(雪月堂)을 짓고 후진을 양성하였으며, 저서로는 『설월당집(雪月堂集)』이 전한다.
1차 작성자 : 정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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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년 김부륜(金富倫) 서간(書簡)

上衙。
城主令前 狀上。
老炎猶熾。不審
令政履何如。無任瞻戀之至。前日中央之約。旣已歸虛。而小邑地主。亦不
意替去。人事之不可侍。如此。可歎。富倫以橫奴事。切欲進陳。而近患
泄痢。不得出入。姑竢安平。趨拜襞積之懷伏計。但每番多酌能狂。
遂失禮貌。預恐預恐。就中橫奴萬石。以其子女。托在三陟府地。府使
喜其來投而撫之。故父隱而子見。多有揚揚之色云。痛憤何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