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 6월 9일, 金富倫이 상대의 편지를 늦게 받은 사유를 전하고, 『宣和遺事』를 빌려 주기 위해 東皐에게 보낸 편지
○○년 6월 9일에 金富倫이 상대의 편지를 늦게 받은 사유를 전하고, 『宣和遺事』를 빌려 주기 위해 東皐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에게 이달 초하루에 편지를 받은 것은 3일에 이미 답장을 써두었지만, 從孫 光纘의 집을 통해 왕래하는 인편을 물어 봐도 매번 없다고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후 또 상대가 보낸 편지는 광찬의 아들인 確이 편지를 받아 秀雲에게 주었다 하는데, 수운이 다시 종에게 주어 전하게 했다가 결국 받지 못하고, 이번에 다시 보내주신 편지를 통해 그때 편지를 보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근황으로는 水災가 들어 田土들이 침수당한 상황을 알렸다. 상대가 빌려달라고 요청한 『宣和遺事』를 보내지만 글자가 작아서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전에 빌려 준 것으로 보이는 『資治通鑑』도 다 본 후 돌려 달라고 언급하고 있다. 추록으로 靑陵産 8매를 보낸다고 하였지만, 청릉산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물품의 단위로 '枚'를 사용한 것으로 보면 과일 종류인 듯하다.
발급자 김부륜(1531∼1598)은 본관은 光山, 자는 惇敍, 호는 雪月堂이다. 東臯는 趙穆(1524∼1606)의 호이다. 본관은 橫城. 자는 士敬, 호는 月川, 東臯이다. 본문에서 언급된 인물 가운데 光纘은 김부륜의 맏형 山南 金富仁의 손자이다. 따라서 김부륜에게는 從孫이 된다. 광찬의 아들이 본문에서 언급된 確이다. 金確(1583~1665)은 자는 而實, 호는 定止齋이다. 1603년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鄭蘊의 천거로 參奉을 제수 받았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병자호란 때에 金光繼와 함께 의병을 일으킨 이력이 있다. 김부륜에게 김확은 從曾孫이 되는데, 김부륜의 몰년과 김확의 생년을 비교 해 보면 김부륜이 아직 생존해 있을 이 편지가 발급된 해에는 김확은 10대 이하의 어린 나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편지의 발급연도를 기재하지 않아 추정하기는 어렵다.
본문에서 언급된 『宣和遺事』는 중국 宋末元初 시기에 지어진 설화집이다. 『大宋宣和遺事』라 하는데, 중국 북송 말 선화연간에 벌어진 이야기가 주축을 이룬다. 송강과 양산박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는 등으로 보면 『水滸志』의 원형으로 볼 수 있는 서적이다. 문체는 講史體로 송대문학사에서 귀중한 문헌으로 평가된다.
1차 작성자 :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