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志山 柳芝榮이 사위인 金昌燮에게 가족의 안부와 건강에 대해 물어 보면서 그동안 안부를 전하지 못해 답답한 마음을 자신의 근황과 함께 전하고, 사위와 딸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22일에 志山 柳芝榮이 사위인 金昌燮에게 가족의 안부와 건강에 대해 물어 보면서 그동안 안부를 전하지 못해 답답한 마음을 자신의 근황과 함께 전하고, 사위와 딸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발급인은 가끔 내왕하는 인편이 있었지만 근심으로 골몰하다가 막상 편지를 쓰려고 할 때는 한명의 인편도 없었던 까닭에 소식을 전하지 못한 것이 매우 암담하다고 표현하였다. 이어 가족의 안부와 건강에 대해 물어보면서 어미와 아이도 무탈한지를 물어보았다. 그 뒤 자신의 근황과 가족의 안부를 전하면서 자신은 상주로서 매사가 여의치 못하고 마음이 허전하다고 하였다. 일전에 신주를 묻은 예를 치렀는데, 마치 새로 '慨廓'하는 듯한 마음이 들었다고 하였다. '개확'은 부모 상을 당하고 난 뒤의 슬픔과 허전한 마음을 표현하는 말로, 『禮記』「檀弓」편에 '小祥에는 슬퍼하고 大祥에는 허전하다.'[練而慨然 祥而廓然]에서 나온 말이다.
편지의 중간 부분에서도 이어 자신의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 長兒의 입술 종기 때문에 정신이 혼미하여 겨를이 없어 온가족이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하였다. 지금은 증세가 줄어들고 있으나 완전히 낫기에는 기약이 없어서 자신이 추천을 받아 영남의 반열에 들어가게 된 좋은 일을 여러 번 이야기 할 수 없었다고 전한다. 慶科가 곧 있다고 들었는데 사위가 시험을 치르는 일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마음이 매우 그립고 그립다고 하면서 끝을 맺었다.
이 편지의 발급인인 류지영(1828∼1896)은 본관은 豊山, 자는 秀翁 또는 仲翁, 호는 志山이다. 1857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그 뒤 司諫院司諫을 거쳐 安東府使, 右承旨, 大司諫, 兵曺參議, 金海府使를 지냈다. 그가 안동부사를 지낸 경력 때문에 보통 하회에서는 그의 집안을 '河東宅' 또는 '安東宅' 등으로 불린다.
이 편지의 피봉은 확인할 수 없어 수취인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본문에서 상대에 대해 자신을 '翁[장인]'이라고 표현하였으며, 상대에게 자신의 딸과 손녀 걱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면 수취인은 자신의 사위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간찰은 풍산김씨 문중 소장 자료임을 감안하여 풍산류씨세보와 풍산김씨세보를 확인해보면, 류지영의 사위 중 풍산김씨 인물로는 金昌燮(1870~1938)이 있다. 김창섭은 자가 孟言이며, 慶基殿參奉을 지냈다. 본문에 나오는 '泰兒母'는 류지영의 딸이자 김창섭의 아내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김창섭의 아들로는 金元在와 金亨在만 있고 '태'자가 들어가는 인명은 확인되지 않으니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옛편지낱말사전』, 하영휘 외,
『풍산류씨세보』,
『풍산김씨세보』,
1차 작성자 : 김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