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丁酉)년 4월 6일에 김태수(金泰洙) 외 2인이 학호(鶴湖)선생의 묘도(墓道) 입석(立石)에 참석할 수 없는 사정을 알리는 편지
정유(丁酉)년 4월 6일에 김태수(金泰洙) 외 2인이 학호(鶴湖)선생의 묘도(墓道) 입석(立石)에 참석할 수 없는 사정을 알리는 편지이다.
첫인사로 초여름을 맞아 상대방의 안부와 그리움 마음을 전하였다. 학호(鶴湖)선생의 묘도(墓道) 입석(立石)은 사문의 성대한 일이며 수백 년 이루지 못한 일인데 장차 어떻게 처리하며, 정한 날짜가 다가오는데 장애가 있지는 않을까 걱정하였다. 발신자 등은 마땅히 몸소 달려가야 하지만 병으로 쇠잔하거나 일에 얽매여서 뜻을 이루지 못해 부끄럽고 죄송하다는 마음을 전하면서 용서를 구했다. 끝으로 큰일을 앞두고 날씨가 좋고 일이 잘 이루어지기를 빌면서 마무리 하였다. 엽전 두 꿰미를 보낸다는 추신이 붙어 있다.
학호(鶴湖)는 김봉조(金奉祖, 1572~1630)의 호이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효백(孝伯)이다. 1601년 진사에 합격하고, 1613년 증광시(增廣試) 갑과로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 정랑(禮曹正郞)과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郭再祐) 휘하에서 화왕산성 전투에 참여하였다. 저서로는 『학호집(鶴湖集)』이 전한다.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