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 志山 柳芝榮이 자신의 딸의 병세를 묻고 약재로 웅담을 보내기 위해 사위인 金昌燮에게 보내는 편지
10월 10일에 志山 柳芝榮이 자신의 딸의 병세를 묻고 약재로 웅담을 보내기 위해 사위인 金昌燮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처음 상대의 안부를 묻고는 때 아닌 雨期에 땔나무 걱정을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병으로 고생하며 지내고 있으나 나머지 식구들은 예전대로 지내고 있다고 하며 근황을 전했다. 상대의 아내이자 자신의 딸이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애가 탄다고 하면서 진품 웅담을 구해 보낸다고 하였다. 그래서 상대가 웅담을 받으면 세 등분으로 나누어 따뜻한 물에 타서 새벽에 복용시킬 것을 당부하였다.
이 편지의 발급인인 류지영(1828∼1896)은 자는 秀翁 또는 仲翁, 호는 志山, 본관은 豊山이다. 증조는 柳憲祚, 조부는 厓雲 柳致睦, 부친은 柳道鳳이며 모친은 恭人烏川鄭氏이다. 형제로는 맏형인 柳驥榮이 있고 아우는 柳蘭榮, 柳興榮, 柳仁榮, 柳啓榮이 있으며 2명의 누이가 있다. 1857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司諫院司諫을 거쳐 安東府使, 右承旨, 大司諫, 兵曺參議, 金海府使를 지냈다. 그가 안동부사를 지낸 경력 때문에 보통 하회에서는 그의 집안을 '河東宅' 또는 '安東宅' 등으로 불린다.
이 편지는 현재 피봉이 확인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정확한 수취인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본문에서 발급인 자신이 상대에 대해 '翁[장인]'이라고 표현하였고, 이름이 아닌 字를 쓰고 있으며, 상대에게 자신의 딸 걱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면 수취인은 자신의 사위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서간은 풍산김씨 문중 소장 자료이다. 따라서 풍산류씨세보와 풍산김씨세보에 의거하면, 류지영의 사위 중 풍산김씨 인물로는 金昌燮(1870~1938)이 있다. 김창섭은 자는 孟言이며 慶基殿參奉을 지냈다. 본문에 나오는 '泰母'는 류지영의 딸이자 김창섭의 아내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김창섭의 아들로 金元在와 金亨在가 있는데, '태'자가 들어가는 인명은 확인할 수 없다.
또한 생활사적으로도 당시 웅담을 약재로 사용하는 방법이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때 아닌 비 때문에 땔나무 걱정을 하는 내용을 봐서는 땔감의 중요성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이 편지는 처음 우측에서 4째 줄에 비교적 큰 글씨로 쓰인 '非時之雨'에서부터 내용이 시작되어 좌측 방향으로 읽어 나간다. 그리고 맨 좌측에서 다시 맨 우측의 비교적 작은 글씨로 쓰인 '云。故僅得小許'로 이어져 행간에도 이어 적고는 마지막으로 월일과 성명을 기재하였다. 연도는 기록하지 않았다. 또한 1번의 隔字를 사용하여 상대의 웃어른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1차 작성자 :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