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년 12월 25일, 李鼎勳이 상대와 영남 사림들이 당한 액운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에 대한 伸冤을 위해 여러 가지를 논의하고자 金聖翼에게 보낸 편지
무○년 12월 25일에 李鼎勳이 상대와 영남 사림들이 당한 액운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에 대한 伸冤을 위해 여러 가지를 논의하고자 金聖翼에게 보낸 편지이다.
처음 상대의 행차가 府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려 했으나 어버이의 병환 때문에 가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이후 부에 찾아갔을 적에는 상대가 이미 떠난 후여서 만나지 못한 탄식 때문에 아쉬워하였다. 이어서 추운 날씨에 먼 길을 떠나는 상대의 안부를 물었다. 영남의 사림들이 당한 액운에 대해 하찮은 亂孼 무리들이 한 道의 정론을 막아 결국 여러분들이 모두 옥에 갇히는 치욕을 당했다고 하면서, 오래지 않아 풀려나겠지만 일의 결말을 알 수 없어 고민된다고 하였다. 監營의 최종 판결이 어찌 날지 알지 못하지만, 일단 발급된 題辭에서는 여러분들이 풀려날 것이라고 하고, 이 일이 임금의 裁可를 받는 것과 관계되는 것이라 조사가 이루어 질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여러 읍의 사림들에게 두루 고하여 한 목소리를 내어야 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자신은 어버이의 병환 때문에 이러한 모임에 참석할 수 없어 죄송하고 부끄럽다고 하였다.
발급자 이정훈(1734~1788)은 본관은 驪江, 자는 大集, 호는 靜窩이다. 부친은 憲成이며, 慶州에 거주하였다. 1756년 式年試 3등으로 진사에 합격한 이력이 있다. 피봉에는 수취인 정보로 "君弼兄"을 기록하였다. 광산 김씨 설월당 문중에서 '君弼'을 자로 쓰는 인물로 김성익(1733~1769)이 있다. 그는 본관은 光山, 자는 君弼, 호는 洛窩이다. 부친은 紘, 생부는 績이다. 1756년 式年試 3등으로 생원에 합격하였다.
이 편지의 발급연도는 '戊'자만 기재되어 있어 확실한 연도를 알 수 없다. 이정훈과 김성익의 생몰연대로 살펴보면 戊寅年인 1758년, 戊子年인 1768년 두 해로 추정할 수 있다. 본문에서 언급된 영남 사림들 또는 한 도와 관련된 사건은 해당 두 해에는 특별히 찾을 수 없지만, 당시 英祖 정권 하에서 탕평 정국의 시대상을 반영한 사건일 가능성도 시사한다.
1차 작성자 :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