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 7월 1일 趙學洙가 자신과 사촌들의 근황을 전하면서 忠祠에서 名帖을 써 보내라는 말에 참석할 수 없다는 뜻으로 사유서를 올렸음을 형에게 알리는 편지.
○○년 7월 1일 趙學洙가 자신과 사촌들의 근황을 전하면서 忠祠에서 名帖을 써 보내라는 말에 참석할 수 없다는 뜻으로 사유서를 올렸음을 형에게 알리는 편지이다.
며칠 안에 잇달아 편지를 받은 심정과 승려를 통하여 공부가 더욱 전일하고 정밀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축하한다고 하였다. 자신은 낮에는 각다귀, 모기, 빈대에게 뜯기느라 어릿어릿한 정력이 더욱 혼미하니 이른바 몽매함을 깨우치는 한 방법에도 마음을 오로지 하지 못한다고 근황을 전했다. 감영의 행차는 더위를 무릅쓰고 가는 것은 면할 듯하나 비의 형세가 아직 이와 같아 길을 나서는 것을 기필할 수 없으니 고민이며, 사촌 休는 성묘하러 강을 건넜는데 무더위에 길가는 행색이 걱정이라고 하였다. 忠祠 회중의 편지가 왔는데 우리 가문이 완전히 빠졌다고 허물하면서 名帖을 써 보내라는 말이 있었지만, 자신은 황송한 처지에 있다고 사양했고, 형은 밖에 있으며, 사촌들은 상란으로 분주하여 나아가 참석할 수 없다는 뜻으로 사유서를 올렸다고 알렸다. 신관 사또는 檜洞 鄭東敎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끝인사를 붙여 마무리 하였다.
발신자 조학수(1739~1823)의 본관은 豐壤, 자는 誨之, 거주지는 尙州이며 부는 趙錫愚이다. 1790년(정조 14) 증광시에 생원 2등으로 합격하였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