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일에 趙時經이 權萬의 죽음을 위로하고 위장을 보내지 못한 한스러운 마음을 鳳巖 寓所에 전하는 편지.
즉일에 趙時經이 權萬의 죽음을 위로하고 위장을 보내지 못한 한스러운 마음을 鳳巖 寓所에 전하는 편지이다.
만나지 못한지 오래되었는데 추위가 심해지니 그리움이 더욱 간절하며, 이때 우거 중의 생활이 계절에 따라 편안한지 물었다. 양산 수령의 좋지 못한 운수는 영남의 운수와 관계될 뿐만 아니라 우리 가문에서 의지하던 바가 적지 않아서 놀랍고 서러우며 애석함을 말로 다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자신은 평소 가슴 통증으로 찬바람을 쐬면 다시 심해져 오래 이불을 뒤집어쓴 폐물이 되었으니 이 삶의 고통을 어찌하느냐고 하소연하였다. 酉谷의 부고를 받고 편지를 보내 위로하려고 하였으나 늘 신병으로 지금까지 미루니 이것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서로 조문하는 의리가 아니어서 슬프고 한스러움을 견디지 못한다고 하였다. 계의 후임자에게 일을 넘길 때 찾아온다면 상의할 일이 있는데 추위가 이와 같아 바라기 어렵고 자신도 감히 마음을 내지 못할 뿐이라고 하면서 끝 인사를 붙여 마무리 하였다.
발신자 조시경의 자는 羲甫, 호는 中厓이다. 숙종조의 격변으로 정국이 자주 바뀌는 데 실망하여 과거를 보지 않고 위기지학에 힘쓰면서 후진양성에 일생을 바쳤다. 본문의 양산 수령은 權萬(1688~?)으로 본관은 安東, 자는 一甫, 호는 江左이다. 1721년(경종 1)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725년(영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28년 정자로 재직시 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의병장 柳升鉉을 도와서 반역을 꾀한 무리들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1746년 병조좌랑으로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병조정랑이 되었다. 정조 때 창의의 공으로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저서에 『강좌집』이 있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