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년 11월 14일에 姜鳳欽이 미상의 수신자에게 보낸 편지로, 靜退서원과 南溪서원을 돕는 일에 대한 수신다의 의견을 물으면서 논의하는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는 사정을 알리는 내용
정사년 11월 14일에 姜鳳欽이 미상의 수신자에게 보낸 편지로, 靜退서원과 南溪서원을 돕는 일에 대한 수신다의 의견을 물으면서 논의하는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는 사정을 알리는 내용이다.
院吏가 고한 뜻을 들으니 지금 말을 타고 본원에 가려한다고 하는데, 오늘 바람이 세게 불고 날이 찬데 탈 없이 도착하였으며 앓던 눈병에 해는 없는지 물었다. 자신은 香禮가 다가오고 수신자도 왕림하니 달려가야 하지만 宗物을 담당하고 있고 내일 변통하여 처리하려고하기 때문에 끝내 敬齋에서 가르침을 받지 못하게 되어 서운하다고 하였다. 이번에 의논하여 처리할 일은 靜退서원과 南溪서원을 돕는 일인데, 고을의 의논은 모두 본원을 중수할 때 각 서원에 글을 보냈으나 한 곳도 돕지 않았고 또 답도 없었는데 본원만 유독 없는 힘으로 곳곳을 돕겠느냐고 하는데 수신자의 생각은 어떠한지 물었다. 우선 각 서원이 돕는지의 여부를 기다려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였다. 며칠 전에 향교의 齋席을 만났는데 그도 우선은 정해진 의논이 없었다고 알렸다. 마땅히 의논하는 곳에 합석해야하지만 일의 기미가 위와 같아 계획을 이루지 못하지만, 본임과 별임이 거의 모두 서원에 오면 상의하여 처리하는 것이 어떠하겠느냐고 의향을 물었다.
발신자 姜鳳欽의 본관은 진주, 자는 舜翊, 호는 海隣으로 영덕군수 등을 지냈다. 靜退書院은 1634년(인조 12)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趙光祖와 李滉, 孟希道, 洪可臣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92년에 趙相禹, 姜栢年, 尹俔을, 1705년에 趙爾後를 추가 배향하였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된 뒤 복원하지 못하였다. 南溪書院은 1627년 柳成龍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위패를 모셨는데 1787년(정조 11) 李好閔을 추가 배향하였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毁撤되어 일부 건물만 남아 있다가, 1950년 한국전쟁 때 완전 전소 되었다. 1990년 현재의 위치에 복원되었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