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년 8월 27일, 이하모가 선부군의 담제가 가까운데 객지에서 맞게 되어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며 유배를 위로하는 내용으로 김인섭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67년 8월 27일, 李夏模가 金麟燮에게 流配를 위문하기위해 보낸 편지이다. 자신에게 戚叔되는 상대방 先父君의 부음을 몇 년 전에 받고 매우 놀랐는데 어느 듯 세월이 흘러 禫制가 가까워졌으니 효자의 슬픔은 끝이 없을 것이고 또 객지에서 담제를 마치게 되었으니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위로하였다. 자신은 세상일에 얽매이고 우환이 겹쳐서 이리저리 분주히 지내다보니 慶弔事에 人事를 모르고 지낸 것이 오래되어 부끄럽고 죄송한 일인데, 상대방과 자신사이는 더욱 그렇다고 탄식하였다. 담제에는 꼭 가서 위로하려고 하였는데 상대방이 횡액에 걸려 집에 없으니 그것마저 이룰 수 없게 되었음을 안타까워하였다. 곧 사면을 받고 돌아올 날이 멀지 않을 것이니 스스로 너그럽게 마음을 가지라고 당부하고 추신으로 심회를 읊은 7언 율시를 덧붙였다. 端磎 金麟燮이 횡액을 만났다는 것은 1867년에 어사 朴瑄壽에 의해 武斷土豪로 지목되어 강원도 固城과 通川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음해에 풀려난 일이 있는데 이 편지를 쓸 즈음에 아직 풀려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료적 가치
간찰자료는 조선시대의 고문서 가운데 양적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연구가 미진한 상태이다. 간찰 자료는 주로 안부와 건강 등 일상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이런 내용들 대부분은 주고받는 사람 상호간에만 이해될 수 있는 내밀한 이야기이거나 이야기 되는 사건의 전말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편지글의 자료적 가치는 바로 이 내밀성과 일상성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간찰자료는 그 자체의 형식과 용어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사회사 혹은 일상생활사, 심성사 등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한 정사나 일반적인 사료에서는 결코 확인할 수 없는 개인의 미묘한 생각이나 입장도 파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간찰은 상호간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주고받거나 학문에 대한 질문과 답변으로 구성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학문적인 교류나 토론을 위한 매개체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학문적인 토론이나 주장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제3자에게도 전달되며, 후대에 문집에 수록되거나 별도의 서책으로 편집되어 개인의 중요한 저술로 전해지기도 한다.
『慶南文化硏究』24집, 이상필, 경남문화연구소 2003
『남명학파의 형성과 전개』, 이상필, 와우[예맥커뮤니케이션] 2005
류지훈,심수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