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고종7) 12월 16일, 侍生 趙雲兢이 凝窩 李源祚에게 답장으로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
내용 및 특징
1870(고종7) 12월 16일에 侍生 趙雲兢이 답장으로 보낸 간찰이다. 수신인이 밝혀져 있지 않으나, 성주의 凝窩 李源祚에게 보낸 편지로 보인다.
편지의 내용은 오랫동안 뵙지 못하여 그리워하는 마음이 歲暮에 더욱 간절히 가슴을 졸이다가가 지금 서찰을 받고, 남은 추위에 대감의 건강이 아직도 편안하지 못함을 알고 온갖 근심이 지극하다고 상대방을 염려하는 마음을 전하였다. 이어 자신은 세밑에 客館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회포가 저절로 많았는데, 근래는 産後 걱정으로 거의 눈썹을 펼 날이 없어 근심 속에 지내고 있다는 근황을 전하였다. 한 해가 가기 전에 한 번 찾아뵈려 한다는 말을 전하며 마쳤다.
자신을 시생이라고 하여 상대방을 스승과 같은 반열로 존중하고 있음을 볼 수 있으나, 조운긍에 대하여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다만 그의 이름이 『承政院日記』에 30여 차례 보이는데, 이 편지를 쓸 당시 그는 星州牧使로 재직하였던 듯하다. 『승정원일기』「고종6년 12월 11일」 기사에, “조운긍을 성주 목사로 삼았다.”라는 기사가 보인다.
자료적 가치
간찰[편지]자료는 조선시대의 고문서 가운데 양적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연구가 미진한 상태이다. 간찰 자료는 주로 안부와 건강 등 일상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이런 내용들 대부분은 주고받는 사람 상호간에만 이해될 수 있는 내밀한 이야기이거나 이야기 되는 사건의 전말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편지글의 자료적 가치는 바로 이 내밀성과 일상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당시의 건강이나 질병, 가난, 흉년 등의 문제와 발신자와 수신자의 다양한 인간관계를 파악할 수 있으며, 또한 정사나 일반적인 사료에서는 결코 확인할 수 없는 개인의 미묘한 생각이나 입장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간찰자료는 그 자체의 형식과 용어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사회사 혹은 일상생활사, 심성사 등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이 편지를 통해서는 한 해가 저물어갈 무렵에 서로 문안 인사를 하던 풍습의 일단을 볼 수 있고, 당시 凝窩 李源祚가 병중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凝窩全集』, 李源朝, 여강출판사, 1986
이세동, 『東方漢文學』12,동방한문학회, 1996
『응와 이원조의 삶과 학문』, 경상북도대학교 퇴계연구소 편, 역락, 2006
金允朝, 『東方漢文學』30,동방한문학회, 2006
『간찰』, 심경호, 한얼미디어, 2006
오덕훈,심수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