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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이원조(李源祚)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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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원조
작성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작성시기 1867
형태사항 크기: 42.5 X 29.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현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안내정보

1867년 이원조(李源祚) 서간(書簡)
1867년(고종4) 동짓달 11일에 이원조(李源祚)성주목사(星州牧使)에게 보낸 서찰로,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를 만나 대화한 내용을 기술하고, 호적의 규정과 향회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힌 내용이다.
황동권,심수철

상세정보

1867(고종 4)년 동짓달 11일, 李源祚星州牧使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67(고종 4)년 동짓달 11일에 李源祚星州牧使에게 보낸 서찰로, 慶尙道觀察使를 만나 대화한 내용을 기술하고, 호적의 규정과 향회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힌 내용이다. 어제 慶尙道觀察使를 만나 성주군의 조세에 관하여 물었더니, “예전의 상납은 이미 다하여 廩錢으로 수습하였으며, 軍器와 客舍는 결전의 잉여분[結剩]으로 충당하였으나, 還錢의 出給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음을 전하였다. 성주는 諐納에 대한 근심이 많을 것임을 위로하고, 식년마다 시행하는 호적의 규정과 향회가 효과가 없는 일과 백성들의 조세를 한꺼번에 거두지 말고 각 면·동의 백성들에게 스스로 등급을 나누어 납부하게 하는 것이 어떠한지를 제의하였다.
자료적 가치
간찰[편지]자료는 조선시대의 고문서 가운데 양적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연구가 미진한 상태이다. 간찰 자료는 주로 안부와 건강 등 일상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이런 내용들 대부분은 주고받는 사람 상호간에만 이해될 수 있는 내밀한 이야기이거나 이야기 되는 사건의 전말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편지글의 자료적 가치는 바로 이 내밀성과 일상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당시의 건강이나 질병, 가난, 흉년 등의 문제와 발신자와 수신자의 다양한 인간관계를 파악할 수 있으며, 또한 정사나 일반적인 사료에서는 결코 확인할 수 없는 개인의 미묘한 생각이나 입장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간찰자료는 그 자체의 형식과 용어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사회사 혹은 일상생활사, 심성사 등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이 간찰을 통해서는 관직에서 물러난 지방 儒林이 고을 수령과 정사를 의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지방 유림들이 어떻게 지방행정에 참여하고, 또 고을 수령은 이들을 어떻게 활용하였는가 알 수 있다.
『凝窩全集』, 李源朝, 여강출판사, 1986
이세동, 『東方漢文學』12,동방한문학회, 1996
『응와 이원조의 삶과 학문』, 경상북도대학교 퇴계연구소 편, 역락, 2006
金允朝, 『東方漢文學』30,동방한문학회, 2006
『간찰』, 심경호, 한얼미디어, 2006
황동권,심수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67년 이원조(李源祚) 서간(書簡)

[피봉]
발신, 上書

[본문]
日昨下復 伏慰 夜謝
政體候一向萬晏 乍寒旋解
感嗽無人不痛 其間漸次向減
否 民圉圉不振 未卽晉謁 伏
悵且悚 棠軒乘夜暫見 只問
本州 今已完局否 答以舊上納果
盡 以廩錢收刷 軍器及客舍 以
結剩了當 而還錢出給 數本不足
民捧尙多諐納 城主或以是憂勞
云爾 此外別無問答耳 鄕會有社
首來參之令 而家兒有所榦於山亭

入去已數日 而不得參會 而藉戶
規正反式 徒擾而無效 似不如一從

時總付 而各面各洞 使民自爲分等
伏未知如何 夾告敢望俯念
餘留日間面
陳 不備伏惟
下監 上書
丁卯至月十一日
李原祚 再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