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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이해상(李海祥)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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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해상, 이원조
작성지역 경상북도 경주시
작성시기 1857
형태사항 크기: 43 X 32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대학교 박물관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안내정보

1857년 이해상(李海祥) 서간(書簡)
1857년(철종8) 3월 13일 이해상(李海祥)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서찰로, 작년에 이미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오른 것을 축하하며 두 차례의 서찰을 보내었으며, 이번에는 고향에 돌아와 선조의 사당에 분향하는 것을 축하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각 집에 두증(痘症)의 근심이 있고, 그 자신의 딸아이도 두증(痘症)을 앓고 있어 마음을 졸이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박상수,심수철

상세정보

1857년(철종8) 3월 13일, 李海祥이 凝窩 李源祚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57년(철종8) 3월 13일 李海祥이 凝窩 李源祚에게 兵曹參判에 오른 것을 축하하며 보낸 서찰이다. 전후 두 번이나 안부의 서찰을 騎曹[兵曹]의 衙座에게 곧바로 전달하지 못하다가 毫宇(이원조의 또 다른 號)의 私家에 미루어 펼치고는 비로소 늙은 선비가 무료함을 깨닫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말을 끝내 卿宰[宰相]의 문하에서 머뭇거려 지난번 直所에서 곧바로 말하지 못한 것은 아직까지 서운하다고 하였다. 상대의 행차가 돌아와 향을 사르며 고하는 경사스러운 일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니 남의 신하가 되고 남의 자식이 되어 영광스럽고 효성스러움이 지극한 것이라고 하였다. 더군다나 형제가 무고한 상황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며 부럽고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였다. 이어 스스로 슬픈 것은 자신의 병은 아침저녁으로 죽을듯하다가 오히려 이렇게 더딘 것은 마치 기다리는 것이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고 고생스럽다고 하였다. 목전에 또 각 집에 두증(痘症)의 근심이 있어 마음 졸이며 날을 보내는 마음 배나 걱정이 되었는데 蘆湖(지금의 노량진 부근)의 從孫 이 좋은 상황이라 먹고 살도 올라 조금도 큰 병의 피로함은 없다고 하였다. 또 그의 어미 역시 손상됨이 없으며 일상생활에서 남을 대하는 태도가 웃으면서 보내고 있으니 자신 집의 경사라고 하였다. 경사가 있으면 姻戚들 끼리 서로 문안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로 흠이 없는 물건에 관하여서는 애초 서로 논의하지 않을 것이니 때 맞게 축하를 한다고 하였다. 그는 딸아이가 痘症을 앓고 있어 마음을 졸이는데 이러한 근심으로 분주하여 정성을 드릴 계획을 세울 수 없다며 부끄러워하며 감히 용서해 달라며 끝을 맺고 있다.
자료적 가치
간찰[편지]자료는 조선시대의 고문서 가운데 양적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연구가 미진한 상태이다. 간찰 자료는 주로 안부와 건강 등 일상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이런 내용들 대부분은 주고받는 사람 상호간에만 이해될 수 있는 내밀한 이야기이거나 이야기 되는 사건의 전말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편지글의 자료적 가치는 바로 이 내밀성과 일상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당시의 건강이나 질병, 가난, 흉년 등의 문제와 발신자와 수신자의 다양한 인간관계를 파악할 수 있으며, 또한 정사나 일반적인 사료에서는 결코 확인할 수 없는 개인의 미묘한 생각이나 입장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간찰자료는 그 자체의 형식과 용어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사회사 혹은 일상생활사, 심성사 등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이 간찰은 1856년(철종 7)에 이원조병조참판에 배명되었을 때 축하의 서신을 보내었으며, 여기서는 상대방이 고향으로 돌아와 선조의 사당에 분향의 예를 올린 것을 읽을 수 있다.
『凝窩全集』, 李源朝, 여강출판사, 1986
이세동, 『東方漢文學』12,동방한문학회, 1996
『응와 이원조의 삶과 학문』, 경상북도대학교 퇴계연구소 편, 역락, 2006
金允朝, 『東方漢文學』30,동방한문학회, 2006
『간찰』, 심경호, 한얼미디어, 2006
박상수,심수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57년 이해상(李海祥) 서간(書簡)

발신. 良洞病弟 賀候書
수신, 李參判台座拜納

前後兩度候書 而未能直達于
騎曹衙座 而追展於毫宇私居 始
覺老措大無聊 語終是囁嚅於卿
宰門下 而頃於直 便不能加伸 則迨切
悚悵 卽伏惟
台駕由還 仍以
焚誥餙慶 定在無多日 爲人臣 爲人子 榮
孝極矣 況
兄弟無故之地乎 爲之羨溯且賀 繼以自
悼也 賤狀病 可以朝夕奄忽 而猶此遲遲 若

有待者 可悶可苦 目前 又以各家痘憂 焦
遑度日 一倍愁念 但蘆湖從孫兒 而善
出場 能食能肥 無毫分大病餘憊 其母

亦無損害 而日用對人 詡詡笑
過 是惟鄙家之慶耳 有慶
相問姻親常事 而似此無欠之
物 初不與論意 欲臨時起
督 替伸賀儀矣 渠 卽阿
女痘 故方焦惡餘 皆奔
汨此憂 無計效忱 愧負之
極 敢望恕諒耶 姪家有
便 故忙此倩候 不宣拜
賀狀
台下照
丁巳三月十三日 弟 李海祥
拜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