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50년 유태목(柳泰睦)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A02+KSM-XF.1850.4713-20100731.E47840507_0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유태목, 이원조
작성지역 경상북도 경주시
작성시기 1850
형태사항 크기: 26.5 X 43.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대학교 박물관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안내정보

1850년 유태목(柳泰睦) 서간(書簡)
1850년(철종1) 3월 8일 사계(査契) 유태목(柳泰睦)경주 부윤(慶州府尹)으로 재직하고 있는 응와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편지이다. 상대방이 다스리는 지역에 사는 일족인 유징조(柳徵祚)는 그의 친산(親山)이 안강면(安康面)사당동(謝堂洞)에 있으며 장사를 지낸지가 이미 근 50년이나 지났는데, 도명기(都命岐)라는 자가 송사를 일으켜 그의 신구(新舊)의 무덤을 파내고자 하니 자신이 사사로이 부탁했다고 여기지 말고 공정하게 판결을 내려 줄 것을 청하였다.
「凝窩 李源祚 先生 生平事蹟考」, 이세동, 『東方漢文學』12,동방한문학회, 1996
김상환,심수철

상세정보

1850년(철종1) 3월 8일, 査契 柳泰睦慶州府尹으로 재직하고 있는 응와 李源祚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50년(철종1) 3월 8일 査契 柳泰睦慶州府尹으로 재직하고 있는 凝窩 李源祚에게 보낸 서간이다. 한 달 전에 집 아이가 돌아와 편안하다는 소식을 들은 후 인편이 막혀 소식을 전하지 못하였음을 밝히고 상대방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전과 다름없이 용렬하게 지내고 있으며 또 子婦가 근간에 병명을 모르는 병으로 5-6일을 고통스럽게 보냈는데 아직도 시원하게 낮지 않은 것은 부녀의 衰境함이 심하게 발작한 것 같아 민망하며, 손자가 과거를 보러 갔는데 당락은 고사하고 아직 돌아오지 않아 걱정이며, 令允과 堂內는 누가 합격하였는지를 물었다. 상대방이 다스리는 지역에 사는 일족인 柳徵祚는 그의 親山이 安康面謝堂洞에 있으며 장사를 지낸지가 이미 근 50년이나 지났는데, 都命岐라는 자가 송사를 일으켜 그의 新舊의 무덤을 파내고자 하니 자신이 사사로이 부탁했다고 여기지 말고 공정하게 판결을 내려 줄 것을 청하였다.
자료적 가치
피봉에 상대방이 다스리는 고을을 東都라고 표현하여 신라시대부터 천년고도임을 드러내었다. 또 피봉과 서찰의 말미에 査契라는 표현을 써서 인척임을 은근히 강조하고, 또 아들에 대한 언급은 없으면서도 子婦에 대한 안부는 상세히 전함으로써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것을 보면 누구나 상대방의 딸이 발신자의 며느리임을 알 수가 있다. 부모는 항상 자식이 병들까 걱정하듯이 손자가 과거시험의 당락을 떠나 건강을 걱정하는 할아비의 정이 보이며, 상대방의 당내에도 누가 합격하였는지를 물으며 지식들이 출세하기를 바라는 부모 된 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한다. 山訟은 조선후기에 흔히 있었던 송사중의 하나이며, 잘 보호하고 돌보아 줄 것을 부탁하지 않고 공정하게 판결을 내려줄 것을 요구하는 필법이 돋보인다.
『凝窩全集』, 李源朝, 『여강출판사, 1986
「凝窩 李源祚 先生 生平事蹟考」, 이세동, 『東方漢文學』12,동방한문학회, 1996
『응와 이원조의 삶과 학문』, 경상북도대학교 퇴계연구소 편, 역락, 2006
「書牘類의 특징과 조선 후기의 양상」, 金允朝, 『東方漢文學』30,동방한문학회, 2006
『간찰』, 심경호, 한얼미디어, 2006
김상환,심수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50년 유태목(柳泰睦) 서간(書簡)

[피봉]
수신, 東都政閣 入納
발신, 下回査契侯狀 謹封
[본문]
月前家兒還 得聞平信
其後便信乍阻 卽問此際
春暮
政体動止萬重 衙中僉節
均安否 溸仰區區 査契依昔
憒憒 無足奉聞 子婦近間 以
無何之症 五六日苦痛 尙未
快服 似是多産婦女 衰境
虛氣 發作見甚 悶然 孫兒
輩 赴右試 尙未還來 入落
姑舍 遠路用慮不淺 右榜姑
未得見 令允及堂內 未知誰某
得捷 爲鬱 就治下安康居
徵祚
卽鄙門姓族 殘微未振
愚迷特甚 以渠山訟落課事

來言其寃 聽之不覺哀憐 大抵渠
之親山 在於安康面謝堂洞 而入葬已

近五十年 其後復附葬妾山 而同堦矣
訟隻都命岐爲名漢 以山世有塚
起訟 而欲掘其新舊葬 是其不奸民
之欺罔官廳者乎
無謂我私觸 從
公決給 千萬切仰
餘在此去從姪
口傳 不備狀儀
庚戌三月初八日
査契 泰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