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9년(헌종15) 윤4월 21일, 칠곡에 거주하는 李肇秀가 凝窩 李源祚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49년(헌종15) 윤4월 21일 칠곡에 거주하는 李肇秀가 凝窩 李源祚에게 보낸 서간이다. 여름이 점차 더워지는데 여행은 무사히 도착하였는지를 묻고, 영광스럽게 寵擢을 입어 東都[경주] 부윤에 제수된 것을 축하하였다.
자신은 그럭저럭 지내지만 우려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며 겸하여 홍역이 침범하여 날마다 경계를 늦출 수가 없어서 머리가 무거움을 말하고, 마땅히 달려가 축하를 드려야 하지만 문과 담장만 바라보고 있으니 서글픔을 견딜 수 없다는 자신의 심정을 전하고 있다.
조선 시대의 지방 관아에서 종2품의 외관직으로는 영흥부·평양부·의주부·전주부·경주부의 다섯 곳에 두었으며, 증조부모까지 위로 3대가 증직이 추증되므로 영광된 자리임에 틀림없다. 이원조는 1849년 당시 나이 58세 때에 金剛山 유람을 떠나 竹嶺과 丹陽의 龜潭·島潭 등 여러 곳의 경치를 살피고, 堤川에 이르러 경주 부윤에 제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原州로부터 다시 걸음을 돌려서 5월에 辭陛하고 부임하였다.
자료적 가치
이 서찰은 ‘응 0525’와 연결되는 서찰로 ‘응 0525’는 이원조의 아들인 鼎相에게 아버지가 경주부윤에 제수된 것을 축하하며 아들을 보내어 축하하였으며, 이 서찰은 부윤에 제수된 이원조에게 직접 보낸 서찰이다. 발신자는 직접 달려가 축하하고 싶지만 담장만 바라보며 서글픔을 삼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발신자도 전염병을 앓고 있었던 것을 느끼게 한다. 부윤에 제수된 상대방에게는 전염병으로 인하여 직접 찾아뵐 수 없는 사정을 말하고, 상대방의 아들에게는 자신의 아들을 시켜 서찰과 선물로 축하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볼 수 있는 서찰이다.
『凝窩全集』, 李源朝, 여강출판사, 1986
「凝窩 李源祚 先生 生平事蹟考」, 이세동, 『東方漢文學』12,동방한문학회, 1996
『응와 이원조의 삶과 학문』, 경상북도대학교 퇴계연구소 편, 역락, 2006
「書牘類의 특징과 조선 후기의 양상」, 金允朝, 『東方漢文學』30,동방한문학회, 2006
『간찰』, 심경호, 한얼미디어, 2006
김상환,심수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