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9년, 남석린(南錫鱗)이 경주부윤인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서간(書簡)으로, 헌종(憲宗)의 승하(昇遐)로 곡반(哭班)에 참여한 정황을 묻고, 자신의 곤궁한 처지를 말한 뒤에 20량의 돈을 빌려달라는 내용
내용 및 특징
1849년 南錫鱗이 慶州府尹인凝窩 李源祚에게 보낸 書簡으로, 憲宗의昇遐로 哭班에 참여한 정황을 묻고, 자신의 곤궁한 처지를 말한 뒤에 20량의 돈을 빌려달라는 내용이다.
內幅에는 발신일자가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皮封에 ‘鷄林 府伯 行軒下’라고 한 것으로 보아 李源祚가 경주부윤으로 재임 중에 보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1849년 4월에 경주부윤에 임명을 받아 5월에 부임하였으며 6월에 헌종이 승하하여 公除기간 26일을 제외하고 7월부터 정무를 시작하였다.
헌종의 國葬은 11월 28일에 있었으며, 관찰사金世鎬의 무함으로 1850년 4월에 이원조는 경주부윤에서 파직되었기 때문에 이 서찰의 발신년도는 1849년 겨울로 추측할 수 있다.
자료적 가치
돈을 꾸어 달라고 부탁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서술한 부분이 재미있다. “西邑에서의 은혜도 마침내 烏有에 속했으며, 冷官의 괴로운 형상은 앞뒤로 매 한가지이다. 객지에서 응대하기가 불편하다면 고향집으로 글을 써서 지시하는 것도 무방하다”는 등의 내용은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이세동, 『동방한문학12집』
동방한문학회,1996
,심수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