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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 홍종응(洪鍾應)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A02+KSM-XF.1849.1100-20100731.E47840269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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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홍종응, 이원조
작성지역 서울특별시
작성시기 1849
형태사항 크기: 50 X 35.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현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안내정보

1849년 홍종응(洪鍾應) 서간(書簡)
1849년(헌종15) 12월 27일 기하(記下) 홍종응(洪鍾應)경주부윤(慶州府尹)인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답신으로, 상대방의 관직생활의 어려움을 염려하며, 자신도 관직이 제수되어서 해가 바뀌면 곧 출발할 계획임을 말하고 보내준 물품에 감사하는 내용이다.
황동권,심수철

상세정보

1849년(헌종15) 12월 27일, 記下 洪鍾應慶州府尹인 凝窩 李源祚에게 보낸 답장
내용 및 특징
1849년(헌종 15) 12월 27일에 記下 洪鍾應慶州府尹으로 재직 중인 凝窩 李源祚에게 보낸 답신이다. 상대방이 租稅 상납에 대해 독촉할 것을 생각하니 염려스럽다며 이원조경주부윤 생활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자신도 고을살이에 제수되었는데, 公私로 서글픔이 절절하니 참으로 기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자신의 심정을 전하고, 새해에 임지로 출발할 계획인데, 서남쪽은 아득히 먼 지방이기에 소식이 막힐 것 같아서, 슬픈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음을 말하고, 끝으로 보내주신 여러 종류의 물품이 진귀하고 좋으니 매우 감사하다는 말로 끝맺고 있다. 이원조「年譜」를 살펴보면, “慶州府는 평소 다스리기 어렵다고 소문이 나 있었으며, 역내에 지인과 인척이 많았다.”라는 언급이 보인다. 이 말을 통해 이원조慶州를 다스리는데, 있어 상당한 고충이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록에, 1849년 11월 24일에 홍종응平安道觀察使로 임명된 기사가 보인다. 이를 통해 고을살이에 제수되었다는 것은 평안도관찰사로 임명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료적 가치
간찰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다소 상투적인 경향을 보인다. 특히 상대의 안부나 자신의 안부를 전할 때 더욱 그러한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이 간찰은 상투적인 표현에서 다소 벗어나 서정적 글쓰기를 보여준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눈발이 어지러이 날리니 다시 간절히 우러러 그립습니다.”라던가, “종이를 대하니 슬픔이 흘러 감정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라는 표현이 그러하다. 그리고 먼 평안도 지방으로 떠나야 하는 관리의 심정이 잘 표현되어 있어서 임지로 향하는 관리의 심정이 어떠한지를 엿볼 수 있다.
『凝窩全集』, 李源朝, 여강출판사, 1986
이세동, 『東方漢文學』12,동방한문학회, 1996
『응와 이원조의 삶과 학문』, 경상북도대학교 퇴계연구소 편, 역락, 2006
金允朝, 『東方漢文學』30,동방한문학회, 2006
『간찰』, 심경호, 한얼미디어, 2006
황동권,심수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49년 홍종응(洪鍾應) 서간(書簡)

[피봉]
발신, 恪 謹謝上
수신, 東京尹 仁篆座 省式謹封
[본문]
頃日數度往晤 非不慰感
而輒値座擾 未做一穩 迨有
茹悵 居然歲華駸駸 梅雪
紛紛 更切瞻誦 卽伏承
惠翰 謹審嚴寒
令政體神護萬晏 仰庸慰
喜 實愜遠祝 第當催科
飽經許多惱擾 旋爲之
擎念萬萬 記下以感以滯 當
寒苦吟 時多殊憐憐 而意外藩
除 感祝感祝 榮耀兢惕 俱不勝
言 隨切公私之愴 實不知爲喜也
計將開歲後 治發而西南杳杳
從以貽阻矣 臨紙流悵 無以
爲懷 惠寄諸種 認荷
盛注 物且珍腆 銘感之極 不容名
喩 顧以好刺史 冒受人饋 還覺
沒廉 仰呵仰呵 餘擾甚略此 惟祝
令候 迓新萬祉 不備 伏惟
令下察 謹拜謝書
己酉臘月卄七日 記下 洪鍾應 拜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