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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유치교(柳致敎)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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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유치교, 이원조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39
형태사항 크기: 42.5 X 32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대학교 박물관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안내정보

1839년 유치교(柳致敎) 서간(書簡)
1839년(헌종5) 표곡(瓢谷)유치교(柳致敎)군자감 정(軍資監正)으로 있던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답신으로, 한양에서 벼슬살이 하는 상대방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자식의 과거시험에 영남의 벼슬아치들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은 데에 대한 불만과, 자식 혼사를 위하여 돈을 꾸어달라는 내용이다.
황동권,심수철

상세정보

1839년(헌종5) 8월 10일, 瓢谷柳致敎軍資監正로 있던 李源祚에게 보낸 답신으로, 한양에서 벼슬살이 하는 상대방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자식의 과거시험에 영남의 벼슬아치들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은 데에 대한 불만과, 자식 혼사를 위하여 돈을 꾸어달라는 내용
내용 및 특징
1839년(헌종5) 8월 10일 안동瓢谷柳致敎軍資監判事로 있던 李源祚에게 보낸 간찰이다. 月初에 遠臺로부터 두 차례 보낸 서찰을 받았으며, 良洞에 있을 때에 답신을 올린 것은 울적한 심정을 8~90% 쏟아내었음을 밝히고, 멀리 한양으로 벼슬살이하려 간 상대방을 더욱 목을 길게 늘이고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심정을 토로하고, 멀리서 공무에 이바지하며 어찌 천리 밖의 買田의 근심이 없겠는가마는 많이 궁핍하지 않다고 하니 위로된다는 말을 전하였다. 자신은 부모님의 병환은 여전하며 가을에 감기[寒嗽]가 겹쳐서 고생하였음을 말하고, 큰 병을 두 번 겪고는 괴로움을 떨치려고 東都를 다녀오는 길에 피로가 겹쳐서 오히려 고생하였다고 하였다. 자신의 아이는 이번 鄕試에 응시하려고 하며, 泮中의 영남 벼슬아치들이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데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상대방의 손자를 지난번에 遠臺에서 만났는데 그의 자질이 훌륭함을 칭찬하고, 이달 10일 이후에 돌아갈 것이라는 말과, 대포의 소식을 듣기가 어려워 자신의 아이가 達城으로 갈 때에 찾아뵙게 할 생각이며, 올 가을에 두 아이의 혼사를 치를 예정인데 禮物은 폐지할 수가 없으니 10량을 빌려주면 내년에 갚겠다는 말과 추신으로 담배를 조금 보낸다는 내용이다.
자료적 가치
간찰[편지]자료는 조선시대의 고문서 가운데 양적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연구가 미진한 상태이다. 간찰 자료는 주로 안부와 건강 등 일상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이런 내용들 대부분은 주고받는 사람 상호간에만 이해될 수 있는 내밀한 이야기이거나 이야기 되는 사건의 전말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편지글의 자료적 가치는 바로 이 내밀성과 일상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당시의 건강이나 질병, 가난, 흉년 등의 문제와 발신자와 수신자의 다양한 인간관계를 파악할 수 있으며, 또한 정사나 일반적인 사료에서는 결코 확인할 수 없는 개인의 미묘한 생각이나 입장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간찰자료는 그 자체의 형식과 용어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사회사 혹은 일상생활사, 심성사 등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이 자료에서는 자식을 과거시험을 통하여 입신시키고자하는 마음과 빚을 내어서라도 자식을 혼인시키려는 부모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凝窩全集』, 李源朝, 여강출판사, 1986
이세동, 『東方漢文學』12,동방한문학회, 1996
『응와 이원조의 삶과 학문』, 경상북도대학교 퇴계연구소 편, 역락, 2006
金允朝, 『東方漢文學』30,동방한문학회, 2006
『간찰』, 심경호, 한얼미디어, 2006
황동권,심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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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유치교(柳致敎) 서간(書簡)

[피봉]
수신, 頖村 李判事 旅座 執事
발신, 瓢谷 柳弟 謹後書 謹封
[본문]
月初 自遠臺 承拜
兄兩度書 一則答弟良洞時書 而計發甚邇 春
夏積鬱 可謂八九分瀉如矣 然繼聞御者之
西爲鄕京貽阻雖一也 而地界較更落落 則不以
仕路獲膴之幸 而少弛其引領恨恨也 新凉洒然
仕體何如 伏惟萬重 所供職司閑劇 何其又無千
里外買田支費之患否 聞頗優饒云 若然則經
過滋況 似不至薄也 瞻言與想 第切心勞 弟親
癠 一味沈綴 重以入秋寒嗽萬倍添越 見今
榮衛 凡百似非如干調補 所可支吾 賤軀再
經大病餘 困拂衡慮者 又從以百端 迺者東都

之行 特出於暢鬱之計 而還添勞
憊 種種仰煎而優焦直一膏火內 間
不消言也 而無何証祟 似涉根蒂職 由

過用薫心 而亦非傍人已 心之所可勉力止沮也 竝切奈何耳
兒子日前 送其甥館 因欲赴試邑矣 卽聞自廟堂 移所
本營云 此非特爲渠一人之跋涉 旣去而還赴 遠遠之爲可

難也 半道先接 及多士已
赴者 不知其數 而蒼黃去
來 皆未免典執衣冠景
色 極不佳云耳 又上道窮
儒 臨時停擧者太半 而
弟輩又皆如是 令人仰
慮不已 泮中嶺紳見留
者 爲誰張丈出麾已去
追 想去年從遊之樂 似
爲之悵然者多矣 令
彧向去遠臺相見 其手
姿可念 而今旬後言歸
云耳 浦信一向無凭
兒子若往達城 則或可
轉晉矣 內書有所請 而
其言不足槪也 但秋後方
營兩兒婚事 而凡百皆欲

從便權停 然最是禮物▣ 屬不可廢者 而鄕価甚踊 限十兩
若有買送之路 則歲後當自此 報償于本家矣 然若或苟
簡 則豈敢煩請耶 餘非遠書可旣 不備書式
照下謹拜候書
己亥 八月 初十日 姻弟 柳致敎
南草小許呈上 但不爲可▣耳 爲者姑未乾故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