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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년 이원조(李源祚)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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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원조
작성지역 서울특별시
작성시기 1811
형태사항 크기: 38 X 29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대학교 박물관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안내정보

1811년 이원조(李源祚) 서간(書簡)
1811년 미상(未詳)의 발신자가 주서(注書)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답신으로, 자신의 오대(烏帶)는 이미 빌려주었으며 이웃의 오대(烏帶)를 빌려서 보내니 남에게는 절대로 빌려주지 말고 사용 후 즉시 돌려보내달라는 내용.
황동권,심수철

상세정보

1811년, 발신자 未詳이 注書李源祚에게 보낸 답신으로, 자신의 烏帶는 이미 빌려주었으며 이웃의 烏帶를 빌려서 보내니 남에게는 절대로 빌려주지 말고 사용 후 즉시 돌려보내 달라는 내용
내용 및 특징
1811년 未詳의 발신자가 注書李源祚에게 보낸 답신으로, 자신의 烏帶는 이미 빌려주었으며 이웃의 烏帶를 빌려서 보내니 남에게는 절대로 빌려주지 말고 사용 후 즉시 돌려보내 달라는 내용이다. 피봉에 ‘李注書 行軒 回納’이라고 하였다. 이원조는 20세가 되던 1811년(순조 11) 5월 초에 承政院假注書에 임명되었다가 한 달 뒤에 遞職되었다. 따라서 이 서찰의 수취자는 이원조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내용 중에 ‘머지않아 堂后로 들어가 서로 만날 수 없는 것이 매우 서글프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를 미루어 보면, 이원조가주서로 임명되고 아직 승원정에 들어가지 않은 상황임을 알 수 있으며, 양부인 李奎鎭兵曹正郞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자료적 가치
간찰[편지]자료는 조선시대의 고문서 가운데 양적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연구가 미진한 상태이다. 간찰 자료는 주로 안부와 건강 등 일상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이런 내용들 대부분은 주고받는 사람 상호간에만 이해될 수 있는 내밀한 이야기이거나 이야기 되는 사건의 전말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편지글의 자료적 가치는 바로 이 내밀성과 일상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당시의 건강이나 질병, 가난, 흉년 등의 문제와 발신자와 수신자의 다양한 인간관계를 파악할 수 있으며, 또한 정사나 일반적인 사료에서는 결코 확인할 수 없는 개인의 미묘한 생각이나 입장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간찰자료는 그 자체의 형식과 용어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사회사 혹은 일상생활사, 심성사 등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이 간찰에서는 ‘이웃에 烏帶를 빌려서 드리는 것이니, 남에게 절대로 빌려주지 말라’는 말에서 꾸밈없는 인간적인 모습과 물자가 넉넉하지 못하던 시절의 인정미를 볼 수 있다.
『凝窩全集』, 李源朝, 여강출판사, 1986
이세동, 『東方漢文學』12,동방한문학회, 1996
『응와 이원조의 삶과 학문』, 경상북도대학교 퇴계연구소 편, 역락, 2006
金允朝, 『東方漢文學』30,동방한문학회, 2006
『간찰』, 심경호, 한얼미디어, 2006
황동권,심수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11년 이원조(李源祚) 서간(書簡)

[피봉]
수신, 注書 行軒 回納

[본문]
前書未復
辱敎又至 從審
從老入都
侍奉萬相 區區慰荷
聞將不日入堂后 無與
相奉 悵甚
春府丈供職一安耶
記末親候粗安耳
烏帶鄙件 已借他人

乞隣送之
須用後卽還
如何
鄕人必勿
借 吾之言
言之如何
在奉 不

卽回 煩逋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