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년 6월 초6일, 李源祚가 부친인 李奎鎭에게 올린 편지
내용 및 특징
모년 6월 초6일 李源祚가 부친인 李奎鎭에게 올린 서간이다.
5일에 江陽의 아전 편에 보내준 16일자의 서찰을 받고 안후는 소상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소식이 막혔던 터라 기쁘고 마음이 풀리었음을 밝히고 장마와 더위에 두 분의 大小家의 여러 식구들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여전하며 河回의 士鉉씨는 執義로 전망되었으나 下諭(地方 벼슬아치에게 서울에 올라오도록 내리는 임금의 命令)는 아직 나오지 않았으며, 지금 趙尹의 일로 臺諫들이 연일 입궐하여 논의 중이며, 兪理煥이 直講으로 入直하고 있으며, 洪司書의 소식이 정확할 것이라는 말을 전하였다.
영남에서 樊巖 대감의 억울함을 씻는 일로 䟽를 올렸으며, 이미 道南書院에서 한차례의 道會가 있었으며, 하회의 柳校理가 먼저 나서고 屛虎를 막론하고 모든 고을이 이 일에 응했다고 하니 그 상세함을 알려줄 것을 청하고, 또 그동안의 경상우도의 의론이 어떠한지를 물었다.
李應敎의 訴狀은 처음에는 논리가 정연하였으나 나중은 쓸데없는 말을 많이 끌어들였음을 지적하고, 자신의 말은 야위고 건강하지도 못하여 지금 팔면 제값을 받지 못하므로 다음으로 미루었음을 말하고, 衙門으로 가는 인편이 있어서 松峴으로 서찰을 보내었는데 받아보았는지를 묻고, 추신으로 濟衆丸과 蘇合丸 각 10개씩, 淸心丸 1개와 政事軸도 보낸다는 내용이다.
자료적 가치
한양에서 벼슬살이 하면서 보고 느낀 것을 빠짐없이 전하며 영남에서 올라온 상소문의 문장의 짜임새까지도 언급한 것을 볼 수 있으며, 屛虎是非로 인하여 병산서원과 호계서원이 서로 내왕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樊巖에 대한 䟽를 올리는 일이라든지 서로 협조할 일은 협조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한약을 지어 올리는 자식의 정리와 배려가 엿보인다. 발신 연도와 피봉이 없어서 아쉬움이 남는 서찰이다.
『凝窩全集』, 이원조, 여강출판사, 1986
「凝窩 李源祚 先生 生平事蹟考」, 이세동, 『東方漢文學』12,동방한문학회, 1996
『응와 이원조의 삶과 학문』, 경상북도대학교 퇴계연구소 편, 역락, 2006
「書牘類의 특징과 조선 후기의 양상」, 金允朝, 『東方漢文學』30,동방한문학회, 2006
『간찰』, 심경호, 한얼미디어, 2006
김상환,심수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