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을축) 12월 24일에 김수로(金壽老)가 쓴 편지로 상대에 대한 인사와 자신의 어려운 삶을 전달하고 상대가 보내준 시에 화답하는 시를 지어서 보낸다는 내용.
내용 및 특징
1925년(을축) 12월 24일에 金壽老(1859~1936)가 쓴 편지이나 수신자를 알 수 없다. 김수로는 端磎 金麟燮의 맏아들이니 내용으로 보아 보냈던 편지가 나중에 다시 본댁으로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
새로 지은 虛樓에서 소요하고 있는데, 어떤 젊은 친구가 편지를 전해주고 바로 돌아갔다고 편지 받은 과정을 전하고, 편지를 받은 감회를 전하였다. 자신은 허물과 후회가 날로 쌓이는 것이 늙어갈수록 더 심하다고 하고, 선조의 유업를 찾고 선조들이 남긴 책을 보고 있으나 총명이 옛날 같지 않으며, 거처도 일정하지 않아서 추운 겨울에 어렵게 지내고 있다는 근황을 전하였다. ‘침탈로 인한 독촉이 날로 가까워 오고 卉服이 책상에 쌓여 삭막하여 좋은 생각이 없다.’고 한 것으로 보아 일제 강점기에 어려운 삶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또 아이들은 한 번 만나면 바로 가버려서 자연 간섭하지 않을 것에 서로 간섭하는 일이 가끔 있으니 이는 아직 공부가 부족하여 구습(舊習)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때문이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 하였다.
상대방이 보내준 시는 맛이 넉넉히 있고 의미는 무궁하여 길이 간직하겠다고 칭찬하고, 상대방의 뜻을 저버리지 못하고 감히 시를 지어 보내니, 보고 난 뒤에 잘못된 곳은 고쳐달라고 겸손하게 부탁하였다.
편지를 써놓고 인편이 없어 해를 넘겼는데, 마침 인편이 있어 허둥지둥 다시 써 보낸다고 추기하였다.
문서 하단에 훼손되어 보이지 않는 글자가 있어 정확한 의미 파악에 어려움이 있다.
자료적 가치
김수로는 김인섭의 장자로 일제강점기를 살아갔던 인물이고 편지를 보낸 1925년도 이러한 시점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侵督은 일제의 침탈을 이야기하는 듯하며 卉服은 일본의 복색을 말하니, 지식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구습에 젖어서 변통할 줄 모르는 자신에 대해 자책한 것으로 보면 신문화와 구문화 사이에 갈등하고 있는 유자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慶南文化硏究』24집 ,「진주 지역 문집의 현황과 그 의미」, 이상필, 경상남도문화연구소 2003
『남명학파의 형성과 전개』, 이상필, 와우[예맥커뮤니케이션] 2005
『端磎集』, 김인섭, 남명학고문헌시스템
1차 집필자:김남규 , 2차 집필자:오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