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김수로(金壽老) 종형(從兄)의 서간(書簡).
1910년 2월 2일 종형(從兄)이 단계(端磎)의 맏아들 김수로(金壽老)에게 보낸 서찰로 추측된다.
어제 무사히 도착하였으나 돌아와 생각하니 도리어 너무 갑자기 온 것 같아 고개 남쪽 구름을 돌아보니 몸을 떨쳐 날아가려는 마음을 누를 수 없는데 밤사이 숙모님 근력이 편안하시고 아우도 편한지 몹시 듣고 싶다고 하였다.
종형은 이후로 온갖 병이 몸에 들어와 얼굴을 펼 날이 없고 토지조사의 일로 인심이 어지러워 염려가 그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엽아(燁兒)의 일은 명심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서로 혼인한 호적초본은 두 통을 부쳐 보내니 잘 거두어 사용하라고 하였다.
다시 내려가고 싶지만 급히 갈 일도 없고 반드시 아이가 이사할 때를 기다렸다가 내려갈 계획이니 그 사이에 혹 급한 일이 있으면 연락해서 알려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1910년부터 일본(日本)이 2,040여만 엔의 경비를 투입하여 한국(韓國)의 식민지적 토지소유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대규모의 국토조사사업을 시행하였는데 이로 인한 민심이 동요되었음을 알 수 있고 식미 통치 초기의 호적제도 등도 실필 수 있는 간찰이다.
1차 집필자: 김남규, 2차 집필자: 오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