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경자) 2월 23일에 허유(許愈)가 김인섭(金麟燮)에게 보낸 간찰로 연로한 연세에 질손(侄孫 종손자)이 죽은 일을 위로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며 자신의 비통한 심정을 전하며, 날씨가 따뜻해지면 계산(溪山)에서 함께 만나자는 뜻을 전하는 내용.
내용 및 특징
1900년(경자) 2월 23일에 許愈가 金麟燮(1827~1903)에게 보낸 답장이다.
먼저 자신은 家運이 매우 모질어 侄孫 永을 잃게 되어 참혹하고 비통함을 금할 수 없었는데, 상대방이 위문해 주었으니 팔순의 연세에 지극한 뜻이 있지 않았다면 어찌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겠냐고 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다. 늘 상대방을 생각하지만, 10리를 떨어져 있는 사이에 자주 내왕할 방법이 없으니 이는 자신에게 분수가 없어서 그러하다고 탄식하였다. 이제 늙어 병이 점점 깊어지는데, 자신의 명성이 알려지는 것 없이 죽어가는 것은 스스로의 분수라고 하며 『論語』에 “40, 50의 나이가 되어서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다면 이 또한 두려워할 것이 못 된다.”라고 이른 것을 염두에 두고 말하였다.
날씨가 온화하고 볕이 좋아지면 함께 溪山에서 술을 마시며 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현실에서 가능한 일인지라고 하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하였다.
이 편지를 가지고 갈 李君이 갑자기 고별하여 이만 줄인다고 하며 글을 맺었다.
자료적 가치
조선 말기 경상도 지역의 큰 학자인 허유가 만년에 쓴 친필 편지로 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으며, 또한 김인섭과 교유가 밀접했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慶南文化硏究』24집 ,「진주 지역 문집의 현황과 그 의미」, 이상필, 경상남도문화연구소 2003
『남명학파의 형성과 전개』, 이상필, 와우[예맥커뮤니케이션] 2005
『端磎集』, 김인섭, 남명학고문헌시스템
『后山集』, 허유, 한국고전번역원
1차 집필자:김남규 , 2차 집필자:오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