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병술) 12월 22일에 김준엽(金準燁)이 김인섭(金麟燮)의 집안으로 보낸 조위장(弔慰狀)에 대한 답장으로 자신의 선조 유사서문(遺事敍文)은 상대방이 가르쳐 준 대로 내용을 고쳤다는 것과 게판(揭板)하는 내년 정월로 다시 정했다는 내용과 동전 다섯 꿰미를 보낸다는 등의 내용.
내용 및 특징
1886년(병술) 12월 22일에 金準燁이 金麟燮(1827∼1903)의 집안으로 보낸 간찰이다. 弔慰狀을 보내준 것에 대한 답장이다.
喪中에 있으므로 “머리를 조아리며 아룁니다.”로 서두를 시작하였고, 답장으로 보냈으므로 ‘謝疏’라고 하였다.
엄동인 섣달에 눈이 깊이 쌓이고, 또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즈음에 그리움이 더욱 간절했는데, 상대방이 잊지 않고 상을 당한 자신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내 준 것에 대해 매우 고맙다고 사례하였다. 또 편지를 보고, 잘 있다는 안부를 알게 된 감회를 전하고, 자신은 그저 구차하게 목숨을 이어갈 뿐이라고 하며 상중에 있는 사람으로서 인사를 차렸다.
이어 자신의 선조 遺事敍文은 상대방이 가르쳐 준 대로 내용을 고쳤으나, 揭板하는 날짜는 사정이 있어서 다시 내년 정월로 정하였다고 알렸다. 또 상대방이 말씀하신 일(구체적으로 알 수 없음)에 대하여, 감히 하지 않을 수 없으나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절의 형편상 다 헤아리지 못하고, 동전 다섯 꿰미를 보낸다고 하며, 죄송함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宗會에서 있었던 일은 탄식할 일이지만, 일의 형편이 그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며, 상대방의 양해를 구하였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잘 맞이하라는 인사로 편지를 끝맺었다.
문집을 잘 받았다는 말을 追記하였다. 자신을 ‘下生’이라고 표시한 것으로 보아, 端磎 金麟燮을 스승으로 모시는 사람으로 보인다.
피봉에 발신 장소를 ‘晉留所’라고 한 것으로 보아, 진주에 머물러 있으면서 보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준엽이 누구인지 자세하지 않다.
자료적 가치
『慶南文化硏究』24집 ,「진주 지역 문집의 현황과 그 의미」, 이상필, 경상남도문화연구소 2003
『남명학파의 형성과 전개』, 이상필, 와우[예맥커뮤니케이션] 2005
『端磎集』, 김인섭, 남명학고문헌시스템
1차 집필자:김남규 , 2차 집필자:오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