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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김수로(金壽老)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A01+KSM-XF.1884.1100-20090831.D48860038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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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수로, 김인섭
작성지역 서울특별시
작성시기 1884
형태사항 크기: 24 X 75.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산청 단계 상산김씨 김인섭후손가 /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단계리
현소장처: 안동대학교 박물관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안내정보

1884년 김수로(金壽老) 서간(書簡)
1884년(갑오) 5월 3일에 김수로(金壽老)가 부모님과 가족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세세히 적고 있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으며,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하고 있다. 호남에 두 관리가 내려갈 것을 미리 알리고 있다. 이 편지에는 당시 어지러운 사회상이 많이 드러나 있다.
1차 집필자:김남규 , 2차 집필자:오덕훈

상세정보

1884년(갑오) 5월 3일에 金壽老가 아버지 단계(端磎) 김인섭(金麟燮)에게 보낸 안부편지.
내용 및 특징
1884년(갑오) 5월 3일에 金壽老(1859~1936)가 아버지 단계 김인섭(1827~1903)에게 보낸 안부편지이다. 소식이 막연한 중, 그간 부모님과 가족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科擧에 공연히 허탕하였음을 밝히며 낭패를 당해 고민이라고 하였다. 바로 출발하려고 하였으나 부탁받은 것들을 갑자기 구하기 어려워 望林에 사는 최문견(崔文見)과 동행할 예정인데, 이는 짐꾼[卜軍]때문이라고 하였다. 德源 영감의 집에서 여름을 지내고 8월 16일에 있는 庭試를 보고 가라고 권하여 그 집에 기숙하고 있는데, 현재 소요가 특히 심하여 淸兵 3천명이 전주로 내려갔으며, 物議가 요란하여 오래 머물기 어려울 것 같아 쾌히 승낙하지 못하고 있으나, 왔다 갔다 하며 밥은 그 집에서 먹고 사먹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번 과거 일은 아주 준비를 많이 하였으나, 자신으로부터 문제가 생겼으니, 누구도 원망할 수 없으며, 비록 이번 과거에는 운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탄식하고, 회동 대신(會洞大臣)은 어제 다시 우의정[右閤]에 임명되어 세 정승이 모두 갖추어졌으나, 세상 소식을 멀리 전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 이 때 의론을 모두 꺼리고 도로가 막혀있어 염려가 되지만, 며칠 뒤에는 그 자세한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니, 상순경에 내려갈 계획이니 20일 경에는 뵐 수 있을 것이므로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다. 또 淸源婦 마을에서 부탁한 일은 勝山의 편에 부쳤으며, 韓昌敎가 부탁한 弔問하는 편지는 아직 전하지 못했으며, 敎旨가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 곧 나올 것이며, 회동의 정대감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惠堂을 만나보라고 권하여 한번 보려고 하였으나 요즘 일체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고 한다는 등의 소식을 전하였다. 丹城에 새로 부임한 수령 張悳根은 서인으로, 승지심구택(沈九澤)이 그의 처남이며 원동민응식의 처남이라고 그의 인척관계를 밝히며, 꽤 명성이 있는 사람으로 善治하겠다고 기약한 사람임으로 새로운 정치를 할 것이므로, 公納은 미리 내어 새로 부임한 수령에게 욕보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당부하였다. 그 사람이 매우 청렴하고 견고한 사람임으로 청탁이 잘 시행되지 않으리라는 점을 부기하였다. 李柬淵은 만나 본지 오래되었는데, 그의 집에 의복을 부쳐왔다고 조금 전에 朴致雲이 말하여 가서 찾아올 계획이라고 하였다. 李仁老에게서는 찾을 것이 없고, 이 사람에게서 9냥 8전을 빌려 썼기 때문에 내려갈 여비는 넉넉하다고 하였다. 또 조 대감이 蓉浦에 내려가서 답서를 받지 못했다고 하였다. 또 晉州도 소란하다고 들었는데, 사실인지 묻고, 양 호남에 순변사(巡邊使)이원회(李元會)안렴사(按廉使)엄세영(嚴世永)이 뽑혀 곧 내려갈 것이라고 하였다. 서울에 과거보러 간 아들 김수로(1859~1936)가 고향 집에 있는 아버지 단계 김인섭(1827~1903)에게 쓴 편지로, 당시 어지러운 사회상이 많이 드러나 있다.
자료적 가치
『慶南文化硏究』24집 ,「진주 지역 문집의 현황과 그 의미」, 이상필, 경상남도문화연구소 2003
『남명학파의 형성과 전개』, 이상필, 와우[예맥커뮤니케이션] 2005
『晋陽續誌』, 성여신, 남명학고문헌시스템
『端磎集』, 김인섭, 남명학고문헌시스템
『琴臯集』, 성석근, 남명학고문헌시스템
1차 집필자:김남규 , 2차 집필자:오덕훈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84년 김수로(金壽老) 서간(書簡)

父主前 上白是
音問漠然難承 伏菀何極 伏未審屬玆端

外內主氣體候 一向萬安 家中大小節 幷皆
無事 乳兒充茁 遠外伏慕無任區區之
至 子 科事空然逐式觀光 良貝如此 伏
悶伏悶 以一所相換去 其終焉何益也哉 卽欲
登途發去 而如干付下者 猝難如意求得
望林崔文見同行爲計 有卜軍故耳
德源令家 勖勸以過夏 觀八月十六日
庭試 而寄食焉 見今騷擾特甚 淸
兵三千名下去全州 都下物議喧然
正難久駐 且恐貽慮不少 故不得
夬許 姑爲往食朝夕 則不賣食耳
今番科事 可謂極其周旋 而自我生頉
誰怨誰尤哉 雖此時此科 非科數 則無
奈何 可歎何及 會洞大臣 昨日重卜
右閤 三相備席 時毛不可遠書可旣
且時議皆掩諱 道路梗塞 不無可
慮 數日后可得聞其詳 則初旬間
發去伏計 以卄日后反面矣 伏望
勿爲貽慮 若何若何 淸源婦村所托 得
付勝山便 韓昌敎所付唁書 姑未探傳
敎旨 未推姑不出 日間似出矣 會洞鄭
台 與諸人勸使一見惠堂 故圖之
一見 此時一切屛人云耳 丹城
張悳根也[西人] 承旨沈九澤其妻男 爲園洞閔應植
男 勢不無人 頗有名對 渠期欲善
治後已云 當有一新政化矣 公納當先爲
輸納 毋至新涖下見辱 伏望伏望 此人甚
淸白堅固 難以請託施行 丹民幸甚
李柬淵不見久矣 俄者朴致雲
此家衣服付來云 當往推耳 李仁
許不必推尋 自此推用九兩八戔 故
下去資斧優優耳 趙台下蓉浦
不得受答書耳 座聞晉州 亦似擾
云 的然耶 兩湖出巡邊使[李元會] 按廉使
[嚴世永] 日間下去耳 餘伏祝
氣體候隨序萬安 不備上白
甲午五月初三日 子 壽老 上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