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4년(갑오) 5월 3일에 金壽老가 아버지 단계(端磎) 김인섭(金麟燮)에게 보낸 안부편지.
내용 및 특징
1884년(갑오) 5월 3일에 金壽老(1859~1936)가 아버지 단계 김인섭(1827~1903)에게 보낸 안부편지이다.
소식이 막연한 중, 그간 부모님과 가족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科擧에 공연히 허탕하였음을 밝히며 낭패를 당해 고민이라고 하였다. 바로 출발하려고 하였으나 부탁받은 것들을 갑자기 구하기 어려워 望林에 사는 최문견(崔文見)과 동행할 예정인데, 이는 짐꾼[卜軍]때문이라고 하였다. 德源 영감의 집에서 여름을 지내고 8월 16일에 있는 庭試를 보고 가라고 권하여 그 집에 기숙하고 있는데, 현재 소요가 특히 심하여 淸兵 3천명이 전주로 내려갔으며, 物議가 요란하여 오래 머물기 어려울 것 같아 쾌히 승낙하지 못하고 있으나, 왔다 갔다 하며 밥은 그 집에서 먹고 사먹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번 과거 일은 아주 준비를 많이 하였으나, 자신으로부터 문제가 생겼으니, 누구도 원망할 수 없으며, 비록 이번 과거에는 운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탄식하고, 회동 대신(會洞大臣)은 어제 다시 우의정[右閤]에 임명되어 세 정승이 모두 갖추어졌으나, 세상 소식을 멀리 전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 이 때 의론을 모두 꺼리고 도로가 막혀있어 염려가 되지만, 며칠 뒤에는 그 자세한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니, 상순경에 내려갈 계획이니 20일 경에는 뵐 수 있을 것이므로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다. 또 淸源婦 마을에서 부탁한 일은 勝山의 편에 부쳤으며, 韓昌敎가 부탁한 弔問하는 편지는 아직 전하지 못했으며, 敎旨가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 곧 나올 것이며, 회동의 정대감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惠堂을 만나보라고 권하여 한번 보려고 하였으나 요즘 일체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고 한다는 등의 소식을 전하였다. 丹城에 새로 부임한 수령 張悳根은 서인으로, 승지심구택(沈九澤)이 그의 처남이며 원동민응식의 처남이라고 그의 인척관계를 밝히며, 꽤 명성이 있는 사람으로 善治하겠다고 기약한 사람임으로 새로운 정치를 할 것이므로, 公納은 미리 내어 새로 부임한 수령에게 욕보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당부하였다. 그 사람이 매우 청렴하고 견고한 사람임으로 청탁이 잘 시행되지 않으리라는 점을 부기하였다.
李柬淵은 만나 본지 오래되었는데, 그의 집에 의복을 부쳐왔다고 조금 전에 朴致雲이 말하여 가서 찾아올 계획이라고 하였다. 李仁老에게서는 찾을 것이 없고, 이 사람에게서 9냥 8전을 빌려 썼기 때문에 내려갈 여비는 넉넉하다고 하였다. 또 조 대감이 蓉浦에 내려가서 답서를 받지 못했다고 하였다.
또 晉州도 소란하다고 들었는데, 사실인지 묻고, 양 호남에 순변사(巡邊使)이원회(李元會)와 안렴사(按廉使)엄세영(嚴世永)이 뽑혀 곧 내려갈 것이라고 하였다.
서울에 과거보러 간 아들 김수로(1859~1936)가 고향 집에 있는 아버지 단계 김인섭(1827~1903)에게 쓴 편지로, 당시 어지러운 사회상이 많이 드러나 있다.
자료적 가치
『慶南文化硏究』24집 ,「진주 지역 문집의 현황과 그 의미」, 이상필, 경상남도문화연구소 2003
『남명학파의 형성과 전개』, 이상필, 와우[예맥커뮤니케이션] 2005
『晋陽續誌』, 성여신, 남명학고문헌시스템
『端磎集』, 김인섭, 남명학고문헌시스템
『琴臯集』, 성석근, 남명학고문헌시스템
1차 집필자:김남규 , 2차 집필자:오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