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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장석유(張錫裕)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A01+KSM-XF.1879.0000-20090831.E47840576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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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장석유, 이원조
작성시기 1879
형태사항 크기: 33 X 37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대학교 박물관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안내정보

1879년 장석유(張錫裕) 서간(書簡)
선조의 무덤과 가까운 다포(多浦)에 묘지를 쓰려다가 현지 주민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치자, 상대방에게 100민(緡)의 돈을 지불하고 한양과 도내의 여러 장로(長老)들을 잘 설득하여 묘지를 쓸 수 있게 해달라는 사연을 담은 별지(別紙).
『응와 이원조의 삶과 학문』, 경상북도대학교 퇴계연구소, 역락, 2006.
「凝窩先生年譜」, 『凝窩全集』, 이원조, 여강출판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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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집필자: 심수철 , 2차 집필자 : 김상환

상세정보

1879년장석유(張錫裕)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답신에 첨부된 별지로, 선영(先塋)과 가까운 다포(多浦)에 묘지를 쓰려다가 현지 주민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치자, 상대방에게 100민(緡)의 돈을 지불하고 한양과 도내의 여러 장로(長老)들을 잘 설득하여 묘지를 쓸 수 있게 해달라는 사연을 담은 내용.
내용 및 특징
1879년장석유(張錫裕)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답신에 첨부된 별지이다. 선영(先塋)과 가까운 다포(多浦)에 묘지를 쓰려다가 현지 주민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치자, 상대방에게 100민(緡)의 돈을 지불하고 한양과 도내의 여러 장로(長老)들을 잘 설득하여 묘지를 쓸 수 있게 해달라는 사연을 담은 별지(別紙). 묘지를 쓸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다가 선영과 가까운 다포(多浦)에 묘지를 쓰려고 했지만, 현지 주민들이 완강하게 거부하여 묘지를 쓰지 못했는데, 상대방의 허락으로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있는 희망이 생겨 매우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있다. 아울러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주선하여 한양의 여러 장로(長老)들과 도내의 여러 아는 사람들과 잘 상의하여 다포에 묘를 쓸 수 있게 해 주신다면 그 댓가로 100민(緡)을 드릴 것을 약속하였다. 피봉에는 ‘태고(胎告)’라 했는데, 이는 태지(胎紙)로 알린다는 뜻이다. 태지는 별지(別紙)의 다른 말이다.
자료적 가치
간찰(簡札)은 예로부터 다양한 계층에서 사용하였으며 인간사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특히 관아(官衙) 의 송사(訟事)에도 산송과 관련한 사건이 가장 많으며, 선조의 무덤과 관련하여서는 자손들이 가장 정성을 기울인다. 이 간찰도 돈을 지불하고 지인을 통하여 한양의 여러 장로(長老)들과 도내의 여러 지인들을 설득하여 선산이 가까운 곳에 선조의 무덤을 쓰려는 후손의 노력을 볼 수 있다.
『응와 이원조의 삶과 학문』, 경상북도대학교 퇴계연구소, 역락, 2006.
「凝窩先生年譜」, 『凝窩全集』, 이원조, 여강출판사, 1986
1차 집필자: 심수철 , 2차 집필자 : 김상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79년 장석유(張錫裕) 서간(書簡)

[피봉]
胎告

山地四無他求處 專意多浦 而厥民頑甚 固非私
力所能周旋 曾以此意仰告
座下 幸被優容 敢此更煩 必須廣謀於
左右 俾得營本官宣力 則萬無不成之慮 想
不待下囑 而已有所周章矣 若失此地 則
罔措情界 已無可言 而過冬丁寧且多浦 自是
先塋餘地 則凡爲我謀忠者 不患無辭 幸
洛中僉丈及道內僉好面之相議 期於有
成 則終始惠恤 殞結敢忘華留 以百緡
銅惠貸 自其處先報馬稧錢 光幸萬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