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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에 장우원(張祐遠)이 수취자 미상에게 보낸 간찰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A01+KSM-XF.1878.0000-20090831.E47840270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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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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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장우원
작성시기 1878
형태사항 크기: 24 X 41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대학교 박물관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안내정보

1878년에 장우원(張祐遠)이 수취자 미상에게 보낸 간찰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였다. 그리고 한집안에서 서로 살상(殺傷)하거나, 서양인[洋酋]과 화적(火賊)이 왕왕 도성에서 잡히는 등의 혼란한 국내 정세를 전하는 간찰. 서양의 열강으로부터 위협을 당하던 당시 실정을 전해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국역) 승정원일기』, 민족문화추진회, 1999
1차 집필자: 황동권 , 2차 집필자 : 김상환

상세정보

1878년(고종 15) 1월 8일에 장우원(張祐遠, 1828~?)이 수취자 미상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며, 또한 세상살이의 위험과 흉흉한 세상인심을 전하는 간찰
내용 및 특징
1878년(고종 15) 1월 8일에 장우원(張祐遠, 1828~?)이 수취자 미상에게 보낸 간찰이다. 장우원은 소청(疏廳)에 왕래하면서 작은 일에 매이니 참으로 가련하다며 자신의 딱한 사정을 표현하였다. 또한 도목정사(都目政事)로 헛된 명성이 전국에 자자하여 낭패라고 하며, 아울러 무엇을 원망하고 탓하겠냐고 전한다. 소(疏)를 올리는 일은 복합(伏閤) 한지가 이미 40여일인데도, 처분이 없어 차가운 땅에서 달포를 지내다가 병으로 내려간 자가 거의 절반이라고 한다. 끝으로 세상살이의 위험이 갈수록 심하여, 한집안에서 서로 살상(殺傷)하거나, 서양인[洋酋]과 화적(火賊)이 왕왕 도성에서 잡히니, 참으로 무엇을 영위(營爲)할 수가 있겠느냐며 혼란시대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였다.
자료적 가치
장우원은 간찰에서 ‘한집안 사람들이 서로 살상(殺傷)하고, 서양인과 화적들이 도성에 출몰하였다가 잡히기도 한다.’라고 언급하였다. 이 같은 사실을 통해 우리는 조선후기에 국내정치의 혼란과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서양 세력들, 그리고 조선의 최고 가치인 오륜(五倫)이 무너져 내리는 현실을 알 수 있다. 아울러 혼란한 현실을 목도(目睹)하고 괴로워하는 한 선비의 절절한 심정을 볼 수 있다.
『(국역) 승정원일기』, 민족문화추진회, 1999
1차 집필자: 황동권 , 2차 집필자 : 김상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78년에 장우원(張祐遠)이 수취자 미상에게 보낸 간찰

[피봉]
謹拜候上

[본문]
深橋一別 便是千里隔歲
事矣 居常耿耿 仰想一般
懷矣 伏惟新元
侍餘兄體萬祉 阮府僉候勻
迪否 區區仰溯且祝 弟(穴+下)雪徒
步 臘初始入闉 而近又往來疏
廳 白首栖屑 自憐自取 且以臘
政 以虛名藉藉南北 又爲臨時
良貝(狼狽) 係關身數 更何怨尤 所
謂疏事 伏閤已四十餘日 而
尙無處分 冷地閱月 病以下
者 幾半 且金書林 貴鄕士也
入京未幾 以傷寒之症 方在出
沒鬼關 見甚極悶 世路危險
去去益甚 所謂同室戈戟相尋
佯[洋]酋火盜 迬迬捕着於都城之
內 如此之時 更何有營爲耶
弟亦從此逝矣 唯
兄斷念之 如何 餘不備上
戊寅元月初八日 弟 祐遠 再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