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8년(고종 5) 4월(윤) 6일, 남희중(南羲重)이 수취자 미상에게 배가 없어서 세(稅)를 완납하지 못한 사실, 덕산묘소(德山墓所)에서 양이(洋夷)가 난동을 부린 일, 장치선(張致善)의 공초(供招)를 언급하는 등 당시의 어수선한 시대상황을 담은 간찰
내용 및 특징
1868년(고종 5) 4월(윤) 6일, 기하(記下) 남희중(南羲重)이 수취자 미상에게 보낸 간찰이다. 세납(稅納)의 연체(延滯)로 골치가 아프며, 쌀은 있으나 배가 없어서 세월만 헛되이 보내고 있다고 하였다. 기와 값[瓦價]에 관한 일은 수일 전 오명선(吳明善)이 그의 춘역(春役)으로 납부해야할 56냥을 이미 깎아주고 자문[尺文]을 받아갔다고 하니, 곧 이 심부름꾼에게 추봉(推捧)해 보라고 전한다.
덕산묘소(德山墓所)에 양이(洋夷:서양 오랑캐)가 난동을 일으켜서 매우 분하다고 하며, 이는 사악(邪惡)한 무리가 독기(毒氣)를 부린 것이라고 전한다. 덕산묘소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南延君)의 묘이다. 『승정원일기 』 고종 5년 4월 21일 기사를 보면, 1868년 4월에 덕산의 묘지에 서양 놈들이 침입하여 사초(莎草)를 훼손한 변고가 있었다는 기사가 보인다. 이 사건은 독일수군 제독인 오페르트(Oppert,E.J., 載拔)가 저지른 사건으로 그는 도굴한 시체와 그 부장품으로 조선정부와 협상하려 했던 것이다. 도굴에 실패한 그는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는 서한(書翰)을 보낸다. 이에 조선은 그의 요구를 거절하였다.
사악한 무리는 천주교인들을 지칭하는 듯하다. 고종 즉위 초에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치의 일환으로 천주교 금압령을 내리고, 9명의 프랑스 신부와 많은 천주교도를 처형한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은 병인양요(丙寅洋擾)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서양 배가 정박한 것은 전 정언(正言)조철증(趙喆增, 1827~1868)이 부추기고 유인했다는 공초(供招)가 죄수 장치선(張致善)에게서 나와 좌우포청(左右捕廳)에 체포하라고 분부했다는 상황을 전한다.
『승정원일기』 고종 5년 4월 19일 기사를 보면, 장치선은 “조철증이 간사한 무리들과 뜻을 같이한 것이 오래되었고, 재작년에 서양 배가 경기 근해에서 소요를 일으킨 것도 그가 부추긴 것이다.”라고 공초(供招)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서양 배가 정박한 사건은 병인양요를 말한다. 1866년 9월에 프랑스 군함이 강화를 점령하였다가 정족산성에서 패하여 물러간 일을 말한다. 장치선은 조철증이 이들을 불러들였다고 증언한 것이다.
자료적 가치
이 간찰에서는 고종 즉위 초에 일어난 병인양요와 오페르트 사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것을 통해 조선 후기, 즉 고종 즉위 초에 서양의 침탈이 얼마나 컸는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건에 대해 발신자 남희중은 굉장히 분개하며, 그 원인 중의 하나로 천주교도를 지칭하고 있다. 서양의 침탈에 따른 급박한 당시의 정황을 알 수 있다.
『(국역) 승정원일기』, 민족문화추진회, 1999
1차 집필자: 황동권 , 2차 집필자 : 김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