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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조술립(趙述立)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A01+KSM-XF.1867.0000-20090831.E47840213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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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조술립, 이원조
작성시기 1867
형태사항 크기: 31.5 X 46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대학교 박물관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안내정보

1867년 조술립(趙述立)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
1867년조술립(趙述立)이원조(李源祚)에게 선고(先稿)를 손보아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서찰이다.
「凝窩 李源祚 先生 生平事蹟考」, 이세동, 『동방한문학12집』,동방한문학회, 1996
1차 집필자 : 박상수, 2차 집필자 : 김상환

상세정보

1867년(고종 4) 인제(姻弟) 조술립(趙述立)대포(大浦)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선고(先稿)를 손보아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서찰.
내용 및 특징
1867년(고종 4) 인제(姻弟) 조술립(趙述立)대포(大浦)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선고(先稿)를 손보아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서찰이다. 장마철을 다보내고도 생기가 발동하지 않고 다만 자리에 누워 폐인이 되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고 하였다. 상대가 팔좌(八座 : 판서)의 직함으로 서당에서 강명(講明)하면서 후학들의 모범이 되니 조야(朝野)에 남은 온축됨이 없다고 하면서 상대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의 당(黨)의 여망 외에도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의 사사로움에 더 절실하다고 하였다. 술립(述立)은 환난으로 다섯 달을 거의 죽다가 살아났는데 오래된 산증(疝症)이 날로 달로 더하여 앉지도 눕지도 못하다가 조금 나아 거의 시체나 다름없이 반달을 지냈다고 하였다. 지금은 거의 실낱같은 정력(精力)으로 80살의 노인이 죽은들 무슨 유감이 있을까 만 선고(先稿)가 아직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 부탁할 사람이 없었는데 이 일은 이미 상대가 일을 잘 마무리해주는 데 달려 있으니 거듭 눈을 감지 못하는 하나의 일이라고 하였다. 금곡(金谷)의 외가에는 제사를 드릴 사람이 없어 양자를 들였는데 제사를 돌보지 않아 자신이 성묘를 한지 10여년이나 되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지난 임술(壬戌)년에 벌령(筏嶺)에서 일부러 이곳에 찾아온 지 여러 날 지내면서 금회(琴晦)와 만나게 해주었고 돌아올 때는 표재종(表再從) 찬보(燦甫)가 작은 책을 주니 이것은 바로 퇴침헌공(退寢軒公 : 趙聖然)이 역은 가장(家狀)이었다고 한다. 이를 보배처럼 보관하고 돌아와 잘 수습하고 예에 따라 보충하여 만에 하나라도 드러내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자신이 병이 들어 하루하루 미루다가 이지경이 이르렀으니 자신은 죽은 뒤 죄인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또 본가의 존망 역시 알지 못하니 후인들의 죄송함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상대 역시 자신들의 집안과 관련이 되었으니 이 문적을 썩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가장(家狀)을 싸서 보냈다. 끝에 자신이 병으로 글을 쓰지 못하여 대신 쓰게 한다는 뜻의 천초(倩草)란 단어가 보인다. 『응와집(응와집)』에 퇴침헌공에 관한「처사매은조공묘갈명(處士梅隱趙公墓碣銘)」을 지은 것으로 보아 조술립의 간청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자료적 가치
이 간찰을 통해 당시 조술립(趙述立)이원조에게 자신의 선고(先稿)를 부탁한 사실을 알 수가 있다.
「凝窩年譜」, 이원조, 『凝窩全集』,여강출판사, 1986
「凝窩 李源祚 先生 生平事蹟考」, 이세동, 『동방한문학12집』,동방한문학회, 1996
이원조, 『凝窩全集』,여강출판사, 1986
1차 집필자 : 박상수, 2차 집필자 : 김상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67년 조술립(趙述立)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

[피봉]
大浦 台座 將命者
勝溪謹候狀 謹封

[본문]
閱盡潦暑 羾濯無緣 只使床褥 廢物苦吟 增懷
而已 竊想 八座實銜 榮動閭里 黌塾講明 楷
範後生 朝野能事 更無餘蘊 卽今於山於野 角
巾道服 惟意 何適 而
勻候節宣 神衛萬相 子舍諸節 次第穩
重否 吾黨輿望之外 更切同人之私 述立 患難
餘喘 五朔瀕死 未卽溘然 最是宿疝 月添日
劇 不能坐作臥 便少歇 故臥一僵屍者 已過半載
而如線精力 隧以幾灰八耋 將化者 有何憾恨 而
第 先稿之 尙未整頓者 多 而屬託無人 此則已
在台兄之良遂 而重有不暝目之一件事 金
谷外宅 主鬯無人 末後次養者 亦沖駭不省
事 而立之省展之役 亦十餘年矣 往在壬戌 自
筏嶺 委尋那邊 累日 周旋於琴晦之間 臨歸
表再從君燦甫 奉致一小(弓+二) 卽我表從妹文叟
氏 爲我外王考 退寢軒公搆家狀者也 卽爲寶
藏而歸 思或收拾散精 依遺事補一例 揄揚其
萬一矣 不料賤疾之 如是罔狀 而明日 又明日之際
逡巡至此 述立 將爲泉下負罪之人 而本家

存亡 又不可知 則此豈非吾黨後人之欠闕也 台兄 亦誼係
祝鄕之先獻 而合下精力 不似此朽敗 將死者 旦於遠近文字

或有不辭者 以公以私 恐宜有不能死
者 且此所懇 無一異本家之人 幸望
乍費衰精 以光斯
文 千萬千萬 意或此
際 有便裹家狀 伏
枕呼倩 餘外萬千
合酬酢 都不排布

丁卯七月二十七日 病姻弟 述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