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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이종상(李種祥)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A01+KSM-XF.1863.0000-20090831.E47840541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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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종상, 이원조
작성시기 1863
형태사항 크기: 32 X 42.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대학교 박물관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안내정보

1863년 이종상(李種祥) 서간(書簡)
1863년(철종14) 8월 26일 이종상(李種祥)이원조에게 보낸 서찰. 상대방이 노년에도 귀성(龜城)과 무흘(武屹)등으로 유람하는 왕성한 기력을 부러워하며 적벽(赤壁)에서 노닌 송(宋)나라의 소동파(蘇東坡)에 비유하였다.
「凝窩先生年譜」, 『凝窩全集』, 이원조, 여강출판사, 1986
1차 집필자: 심수철 , 2차 집필자 : 김상환

상세정보

1863년(철종14) 8월 26일 이종상(李種祥)이원조에게 보낸 서찰로, 상대방이 노년에도 귀성(龜城)무흘(武屹)등으로 유람하는 왕성한 기력을 부러워하며 적벽에서 노닌 소동파에 비유한 내용.
내용 및 특징
1863년(철종14) 8월 26일 이종상(李種祥)이원조에게 보낸 서찰이다. 피봉은 없으나 이원조자산부사를 지냈으므로 이웃의 귀성(龜城)에 갔다는 내용으로 보아 추정할 수 있다. 서두에서 북으로는 귀성(龜城)과 남쪽으로는 영산(靈山), 현풍(玄風)을 유람하고 돌아와서는 또 무흘(武屹)에서 가진 모임과 노년의 왕성한 근력에 대하여 탄식과 부러움을 나타내면서, 이런 모습을 적벽에서 신선처럼 노닌 소동파(蘇東坡)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고 멋스럽게 표현하였다. 이어서 자신이 지난달에 고향을 찾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조세를 가장 잘못 권장했다는 비난에 대한 변명과 회연서원(檜淵書院)의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서운한 마음을 나타내었다. 또 한여(漢如) 형이 한번 묶고 돌아갔는데 만류하지 못한 것이 부끄럽고 아이들이 자상한 질문을 받은 것이 감사하기 그지없는데 긴요하지 않은 행차를 하였다고 하여 미안한 마음을 은근히 표현하고 있다. 회연서원(檜淵書院)은 조선중기의 성리학자인 한강 정구(鄭逑, 1543∼1620) 선생이 선조 16년(1583)에 회연초당을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여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던 곳이다.
자료적 가치
이원조의 만년의 일상과 건강을 짐작하게 해주는데, 많은 선비들이 서원에서의 모임을 얼마나 참석하고 싶어 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凝窩先生年譜」, 『凝窩全集』, 이원조, 여강출판사, 1986
1차 집필자: 심수철 , 2차 집필자 : 김상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63년 이종상(李種祥) 서간(書簡)

[피봉]
수신,
발신,

[본문]
秋思憀栗 政爾瞻想際 伏
承下書 恪審
台體動止候萬護 已劇欣慰 而
又伏聞 西赴龜城 南遊靈玄而
歸 又作武屹之會 又不勝歎羨
夫以望八筋力 雖偃仰一室之內 猶
患其屈伸之難 而乃能繚繞
百里外 道路次舍之勞 多人會集
之煩 不少損害 而去益康旺 孰
謂飛仙遨遊 不可驟得 恨不使
坡翁見吾台今日也. 前月
尋鄕 意有所決 而爲營家所撕

握 又將邑勢民情所拘 不免復尋 此迷
道 愧事愧事 至於謂最謬獎 非所歉當 而此一

字 惟在人 看得之如何 使
家必不以其全軆許人 當是
柔弱不振之別
題目 豈非兢兢
處耶 檜院雅
集 令人飄然
神往 而病意
長如此 未知果
然攝後塵鬯
出悁書耳 漢
如兄一宿言
旋 而挽之不得
當是主人面目
帶得塵埃故

耳 可愧可悵 兒子輩每蒙
優問 不但柒輩之感戢處
而月前果已作不緊之行矣
餘在吏復 不備 伏惟
下察 上謝書
癸亥八月二十六日 下生
李鍾祥 再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