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3년(계해) 1월 1일에 정응락(鄭應洛)이 김인섭(金麟燮)에게 보낸 간찰로 김인섭의 아버지인 김영(金欞)이 유배간 일에 대해 위로하고 김영(金欞)의 편지를 받고 잘 지낸다는 소식을 받았다는 것을 알리면서 보내준 시에 화답시를 보낸다는 내용.
내용 및 특징
1863년(계해) 1월 1일에 鄭應洛이 金麟燮(1827~1903)에게 보낸 간찰이다.
『진양속지』권5 「品行」에 鄭彙均의 字는 應洛, 號는 琴窩, 晋陽人며 김인섭의 문하에 출입해다는 기록이 보인다.
지난겨울에 객지에서 만났던 일이 이미 지난 일이 되어, 그리움이 새해를 맞아 더욱 새롭다는 인사와 함께 새해에 상대방의 모친을 모시고 지내시는 안부와 자제들의 안부를 물었다. 특히 부친과 떨어져 사는 심정이 새해를 맞아 견디기 어려울 터인데,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다. 이는 김인섭의 아버지인 金欞이 1862년에 임자도로 귀양 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두고 한 말로 보인다. 이 당시 김인섭은 해배를 위하여 매우 고생하였고, 김령의 귀양살이 내용은 그가 지은 『艱貞日錄』에 자세히 나와 있다. 1862년 8월에 귀양 갈 때, ‘鴨洞伯顯 權應洛의 집에 들렀으나 백현이 없어 매우 섭섭하였다.’라는 기사가 있고, 같은 해 12월에 ‘권백현의 편지를 받았다.’라는 기사가 있다.
이어 자신은 외로운 처지에 나이을 더 먹게 되니 감회가 견디기 어렵고, 더구나 객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처지가 매우 쓸쓸하다고 하였다.
지난번에 春卿(朴泰茂의 자)의 집에 갚아야할 돈이 2냥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다시 3전이 더 있다고 하니 그 말대로 갚으려고 한다고 하고, 돌아갈 때 상대방이 있는 곳으로 들리려고 하였으나, 길이 매우 질어서 갈 수 없었다고 하였다.
세밑에 상대방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저간의 사정을 자세히 알았는데, 그곳에서 함께 지내는 분을 만나 여러 곳을 소요하니 정취가 있다고 하더라는 말을 전하며 상대방을 위로하였다.
지난번에 보여 준 시에 대하여 칭찬하고, 자신도 그에 대한 화답하는 시를 적어 보낸다고 하였다.
시고를 적은 별지가 있다.
자료적 가치
『慶南文化硏究』24집, 「진주 지역 문집의 현황과 그 의미」, 이상필, 경상남도문화연구소 2003
『남명학파의 형성과 전개』, 이상필, 와우[예맥커뮤니케이션] 2005
『晋陽續誌』, 성여신, 남명학고문헌시스템
『端磎集』, 김인섭, 남명학고문헌시스템
『琴窩遺稿』, 정휘균, 남명학고문헌시스템
『艱貞日錄』, 김영, 『경상도 단성현 사회자료집』, 2003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간.
1차 집필자 : 김남규, 2차 집필자 : 오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