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7년(철종8) 2월 23일에 정유성(鄭裕成)이 이원조에게 보낸 간찰.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른 지 15년 만에 특별히 왕의 첨서낙점(添書落點)에 의하여 종2품의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품계가 오르고, 선조에게까지 증직되어 가묘(家廟)에 추은분향(追恩焚黃)하고, 만년에 귀향하여 만귀정(晩歸亭)을 지어 놓고 독서와 자연을 벗 삼으며 여생을 보내는 상대방의 처세관을 칭찬하는 사연.
내용 및 특징
1857년(철종8) 2월 23일에 매곡(梅谷)의 정유성(鄭裕成)이 대포(大浦)의 사돈인 이원조에게 보낸 간찰이다.
1856년 10월에 이원조는 특별히 왕의 첨서낙점(添書落點)에 의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오위도총부 부총관(五衛都摠府 副總管)의 군직(軍職)이 내려졌다.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른 지 15년 만에 종2품의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품계가 오른 것이다. 즉시 사퇴하는 상소를 하였으나 허락하지 않고 오히려 병조참판(兵曹參判)을 제수하였다. 부득이 병조(兵曹) 의 일을 보다가 추은분향(追恩焚黃)을 위해 말미를 얻어 고향으로 내려왔다. 정유성(鄭裕成)의 장남 정치익(鄭致翼)은 이원조의 둘째 사위이다.
내용은 추은분향이 다음 달 보름으로 정하여지고 천양(泉壤)의 영광이 양묘(兩廟)에 이른데 대한 지극한 효성을 칭찬하고, 며느리는 다음 달 8일에 출발할 예정이지만, 하태(下胎)의 증상으로 약을 복용하고 있는데다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거동을 하니 여러가지로 걱정되는 마음을 전하였다.
지금 만귀정(晩歸亭)을 보니 취성리(聚星里)의 고정(考亭)과 같음을 밝히고, 다만 ‘근심하는 자는 즐거워하고 병든 자는 기뻐한다.’는 소식(蘇軾)이 지은 희우정기(喜雨亭記)를 인용하여 칭찬하고, 상계령(上溪令)의 답장에는 번거롭게 자황(雌黃)을 가할 필요 없이 덮어두면 그만이며, 항상 산경(山扄)을 가보지 못하여 항상 죄스럽게 여겼는데, 분황(焚黃)시에는 참석하여 방문하겠다는 뜻을 전하고, 추신으로 새해 달력을 보내준데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자료적 가치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른 지 15년 만에 특별히 왕의 첨서낙점(添書落點)에 의하여 종2품의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품계가 오른 것을 보면 벼슬아치의 길이 험난함을 증명한다. 상대방이 높은 벼슬에 제수되어 그의 선조에게까지 증직되었으며, 추은분향(追恩焚黃)의 영광을 함께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만년에 귀향하여 만귀정(晩歸亭)을 지어 놓고 독서와 자연을 벗 삼으며 여생을 보내는 상대방의 처세관을 칭찬하였다.
『응와 이원조의 삶과 학문』, 경상북도대학교 퇴계연구소, 역락, 2006.
「凝窩先生年譜」, 『凝窩全集』, 이원조, 여강출판사, 1986
1차 집필자: 심수철 , 2차 집필자 : 김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