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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유병기(柳柄基)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A01+KSM-XF.1854.0000-20090831.D48860194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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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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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유병기, 김인섭
작성시기 1854
형태사항 크기: 23 X 38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산청 단계 상산김씨 김인섭후손가 /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단계리
현소장처: 안동대학교 박물관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안내정보

1854년 유병기(柳柄基) 서간(書簡)
1854년(철종4) 11월 14일 유병기(柳柄基)단계(端磎) 김인섭(金麟燮)에게 보낸 편지이다. 절하고 떠난 것이 이미 여러 밤이 지나 비린(鄙吝)한 생각이 싹트는 것은 가려도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책을 읽는 여가에 도를 기르는 체후가 편안하리라 생각하니 그리움을 견딜 수 없다고 첫 인사를 했다. 시생(侍生)은 구석진 마을에 칩거하여 학문이 인생의 제일 즐거운 일이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게으름이 고질이 되어 자립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백하봉(白霞峯) 조문장(趙文丈)의 시에 차운하는 것은 이미 스승의 명이 있었으나 졸렬하다고 침묵하거나 바쁘다고 짓지 않을 수가 없어 지금 겨우 지어 올렸는데 군자가 사람을 포용하는 성덕으로 바로잡아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1차 집필자: 김남규, 2차 집필자: 오덕훈

상세정보

1854년(철종4) 11월 14일 유병기(柳柄基)단계(端磎) 김인섭(金麟燮)에게 보낸 간찰
내용 및 특징
1854년(철종4) 11월 14일 유병기(柳柄基)단계(端磎) 김인섭(金麟燮)(1827~1903)에게 보낸 간찰이다. 절하고 떠난 것이 이미 여러 밤이 지나 비린(鄙吝)한 생각이 싹트는 것은 가려도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책을 읽는 여가에 도를 기르는 체후가 편안하리라 생각하니 그리움을 견딜 수 없다고 첫 인사를 했다. 시생(侍生)은 구석진 마을에 칩거하여 학문이 인생의 제일 즐거운 일이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게으름이 고질이 되어 자립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백하봉(白霞峯) 조문장(趙文丈)의 시에 차운하는 것은 이미 스승의 명이 있었으나 졸렬하다고 침묵하거나 바쁘다고 짓지 않을 수가 없어 지금 겨우 지어 올렸는데 군자가 사람을 포용하는 성덕으로 바로잡아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이 세상의 출처가 아직도 어려워 세금 거두기만을 찾는 것은 비록 개나 양에게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나 지사가 깊이 염려할 일은 아니며, 천운은 왕복하며 고진감래(苦盡甘來)가 또한 이치라고 했다. 밝은 하늘이 이 백성을 버리지 않는다면 어찌 태평한 세상을 다시 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왕망의 찬탈로 크게 어지러워진 이후에야 다시 세상이 밝아졌음을 예로 들면서 지나치게 걷는 세금은 지금부터 어려움이 더해져서 괴변이 있은 뒤에야 밝은 하늘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의 견해는 이미 지난 일에서 증명이 되어 말씀드리는 것이니 살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당시의 어려움을 지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장래를 예견한 안목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문체가 유려하다.
자료적 가치
『慶南文化硏究』24집,「진주 지역 문집의 현황과 그 의미」, 이상필, 경상남도문화연구소 2003
『남명학파의 형성과 전개』, 이상필, 와우[예맥커뮤니케이션] 2005.
『晋陽續誌』, 성여신, 남명학고문헌시스템
『端磎集』, 김인섭, 남명학고문헌시스템
『琴臯集』, 성석근, 남명학고문헌시스템
1차 집필자: 김남규, 2차 집필자: 오덕훈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54년 유병기(柳柄基) 서간(書簡)

謹再拜上候書
基白拜違軒屛 已度數宵 鄙吝之萌 掩不可得也 伏惟
尋數之暇
道體候扶神康泰 仰溯區區 無任下忱 侍生 縶[蟄]居窮蔀 非不知學問
之爲人生 第一樂事業 而懶惰成痼 不能自立 且所謂學班 皆不免天皇
此晋大者 十有一人 亦所無暇 切只興歎而已 就伏白霞峯趙文丈次韻 旣
有函筵之命 則義不可拙 以終黙而忙未搆 及今才抄呈 縱有帳下 兒笑躄
以大君子容人之盛德 幸加斤正否 彳亍斯世 出處尙難 徵租之索 雖是見
苦於犬羊 而亦非志士之所深慮爲也 天運往復 無不有時 而苦盡甘來
亦有理也 明天在上 將不遺斯民 則東土生民 豈不有復覩太平世也 昔
纂祚貧民富人 不能保全 終致大亂 而光武昇平 大沃日月 復明於世矣
方今生民之困苦 如此特甚 而猶不及莽世也 則稅徵之索 若從此復加 日
異時殊 則必有怪變 如此然后 乃可見素天之回也 淺陋之見 非有識
於豫來 而自有驗於旣往故敢達如是 下燭若何 餘不備 伏惟
尊察 上書
甲寅復月旬四日 下生 柳柄基 拜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