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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2년 이인량(李寅亮)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A01+KSM-XF.1852.0000-20090831.E47840323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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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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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인량
작성시기 1852
형태사항 크기: 38.5 X 55.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대학교 박물관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안내정보

1852년 이인량(李寅亮) 서간(書簡)
1852년(철종 3) 기하(記下) 이인량(李寅亮)이 보낸 서찰로 상대의 시를 판각하여 보낸다고 하였다.
이원조, 『凝窩全集』, 여강출판사, 1986
「凝窩 李源祚 先生 生平事蹟考」, 이세동, 『동방한문학12집』, 동방한문학회, 1996
1차 집필자 : 박상수, 2차 집필자 : 김상환

상세정보

1852년(철종 3) 기하(記下) 이인량(李寅亮)이 보낸 서찰로 상대의 시를 판각하여 보낸다고 하였다.
내용 및 특징
1852년(철종 3) 기하(記下) 이인량(李寅亮)이 보낸 서찰로 상대의 시를 판각하여 보낸다고 하였다. 석계연정(石桂蓮亭)에서 가르침을 받고 오랫동안 막혔던 회포의 나머지가 많다고 하였다. 요사이 조섭하는 바는 길에서 수고롭게 지내면서 따로 손상되는 바는 없는지, 집에 돌아와 봄은 어떠한지 물었다. 또 산천을 유람하면서 회포가 풍성해지고 숙원을 상쾌하게 풀렸을 것이라고 하였다 자신[記下]은 예전처럼 머리가 아프다고 하였다. 또 자신은 겨울의 일을 없앨 방법이 없으니 외로이 여관(旅館)에 몸을 맡기고 병 또한 자주 일어난다고 하였다. 서신은 천리 먼 길에 막혀 어찌 쇠약한 상황을 견딜지 걱정하고 있다. 상대의 시를 이미 판각한 것을 찍어서 보내드릴 것이니 누가 벽라롱(碧紗籠)을 하지 않는 날 뒤에 붉은 소매로 먼지를 털던 것을 보지 않았는가?라는 고사를 인용 상대의 시를 훌륭함을 칭찬하였다. 벽사롱(碧紗籠)은 중국왕파(王播)는 어렸을 때부터 외롭고 빈한하여 양주(楊州)목란원(木蘭院)에 가서 중들과 함께 살았다. 중들은 오래 있는 그가 싫어져서 이제는 밥을 먹은 뒤에 종을 울렸다. 왕파가 불쾌하여 벽에다 시를 두 구(句) 적었다. “상당(上堂)에서 끝나면 각자 동서로 흩어지니, 도리(闍梨)가 식사 후에 종치는 것이 부끄럽다.” 그리고 24년[二紀] 뒤에 왕파가 이곳 태수(太守)로 와서 옛 절간을 방문하니 자기가 적어둔 글이 먼지 묻을까 하여 푸른 비단으로 덮혀 있었다. 왕파는 계속하여 적었다. “20년 전 먼지 묻었던 얼굴이, 이제사 비로소 벽사(碧紗)로 가리워졌구나.” 하고 한데서 나온 말이다. 붉은 소매로 먼지를 턴다는 말은, 송(宋) 나라 때 위야(魏野)구준(寇準)과 함께 어느 절에 가 놀면서 똑같이 시를 써 붙여 놓았다가, 뒤에 다시 함께 그 절을 찾아가 보니, 구준의 시는 푸른 깁으로 잘 싸서 보관하고 있고, 자신의 시는 먼지가 잔뜩 낀 채 그대로 있으므로, 그들을 따라갔던 관기(官妓)가 붉은 소매로 그 먼지를 털어 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자료적 가치
이 서찰을 통하여 당시 이인량(李寅亮)이 수신자와 시를 주고받으며 교유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이원조, 『凝窩全集』, 여강출판사, 1986
「凝窩 李源祚 先生 生平事蹟考」, 이세동, 『동방한문학12집』, 동방한문학회, 1996
1차 집필자 : 박상수, 2차 집필자 : 김상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52년 이인량(李寅亮) 서간(書簡)

[피봉]
謹謝上
[본문]
阻懷臨歲 尤切 伏惟近寒
台體晏重 直次不至太頻 擎溯
且念 弟 省安帶昨 而一自旬有
餘日 忽患毒感 强起巾洗矣 近
則可謂重痛 不食不眠 欲起還?
之際 享帖來迫 逃遁不得 勢
將明朝出齋 初二 當陪香詣
廟矣 寒節 凡具不得不借力於
台兄 故玆綠呈 須卽分付 ?無
病客失攝之地 如何 病勢如此 事
勢如此 而日甚 故亦無以逢着 尤??

昏歲後一擾 姑不備禮

卽 順 弟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