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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년 정유성(鄭裕成)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서찰.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A01+KSM-XF.1850.0000-20090831.E47840232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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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정유성, 이원조
작성시기 1850
형태사항 크기: 31 X 44.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대학교 박물관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안내정보

1850년 정유성(鄭裕成)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서찰.
이원조, 『凝窩全集』, 여강출판사, 1986
「凝窩 李源祚 先生 生平事蹟考」, 이세동, 『동방한문학12집』, 동방한문학회, 1996
1차 집필자 : 박상수, 2차 집필자 : 김상환

상세정보

1850년(철종 1)정유성(鄭裕成)이원조(李源祚)에게 자신의 며느리가 순산한 소식 등 일상의 안부를 전하는 서찰.
내용 및 특징
1850년(철종 1)정유성(鄭裕成)이원조(李源祚)에게 자신의 며느리가 순산한 소식 등 일상의 안부를 전하는 서찰이다. 답장을 받고 여러 날이 되었는데 정사(政事) 잘 지내고 있는지 비워둔 자리의 남은 일로 다시 배나 고생스럽지 않은지 물었다. 날마다 자라나는 번다한 일처리로 종일 수응하느라 어찌 견디는지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복중(服中)인 자신은 병도 없는데 아프고 먹지 않았는데도 배가 불러 마음이 침침한 것이 흙으로 만든 인형이나 뻣뻣한 나무와 같다고 하였다. 이때 떨치고 날아가 몸을 피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며느리는 초이틀 새벽 무렵 순산을 하여 다행으로 비록 드러나는 탈은 없지만 먹는 것이 아직 달지 않아 걱정이니 아들이냐 딸이냐는 말할 것도 없다고 하였다. 홍역을 앓던 아이들은 모두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고 백씨(伯氏)도 회복이 되었다고 하였다. 마침 보문(普門)을 오가는 인편이 있어 서찰을 부치며 인사를 맺었다.
자료적 가치
이 간찰을 통해 정유성의 며느리가 손자를 보았으며 홍역을 앓았던 자식들이 병에서 나았음을 알 수가 있다.
이원조, 『凝窩全集』, 여강출판사, 1986
「凝窩 李源祚 先生 生平事蹟考」, 이세동, 『동방한문학12집』, 동방한문학회, 1996
1차 집필자 : 박상수, 2차 집필자 : 김상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50년 정유성(鄭裕成)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서찰.

[피봉]
梅谷服弟謹候狀上
一悰亭政座執事入納 省式謹封

[본문]
省式 拜覆有日 伏惟
政服體 加護萬重 曠職餘務 又復一倍愼踏
否 日長理劇 終日酬應 何以堪耐 不能無仰悶
耳 服弟 不病而痛 不食而飽 凡凡沈沈 有若土偶
木强耳 時欲奮飛逃躱 而不能得如何 婦阿 初
二曉頭 順娩可幸 而雖無顯頉 食尙不甘爲
悶也 男女不足言耳 經疹兒 皆稍稍向安 其
伯能復舊樣耳 適有往復於普門 因
便略候 不備伏惟
庚辰四月六日 弟服人 鄭裕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