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9년(헌종15) 6월14일, 대구광역시 판관(大邱判官)김기현(金箕絢)이 경주 부윤(慶州府尹)으로 재직 중인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안부서신으로, 무더위에 관직생활은 괜찮은지를 묻고, 자신은 여름 감기로 고생을 한다는 내용.
내용 및 특징
1849년(헌종15) 6월 14일, 대구광역시 판관(大邱判官)김기현(金箕絢)이 경주 부윤(慶州府尹)으로 재직 중인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에게 보낸 안부서신이다.
『일성록』1816년 12월 23일 기사를 보면, 그는 1846년 12월 23일에 대구광역시 판관에 제수되었다가, 1849년 6월 18일 다시 상주 목사(尙州牧使)에 제수 되었다. 그리고 피봉에 ‘月城 政閣 執事’라고 표기하였다. 월성(月城)은 경주(慶州)의 옛 이름이다. 당시 이원조는 경주 부윤(慶州府尹)으로 재직 중이었기 때문에 수취자는 이원조이다.
백성들이 복이 없이 때문에 헌종(憲宗, 1827~1849)께서 승하 하셨으니, 자신은 천지가 어둡고 마음이 무너져 위로할 말이 없다고 하였다. 헌종은 1849년(헌종15) 6월에 23세의 젊은 나이로 외척들의 세도정치 속에서 왕권강화를 이루지 못하고 요절하였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때에 관직생활은 괜찮은지 등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여름 감기가 들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당신이 보내준 자석영(紫石英)을 약재로 요긴하게 썼다고 감사인사를 올리는 추신이 있다.
자료적 가치
간찰(簡札)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계층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 내용은 자신의 감정이나 사고 등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어서 인간사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이 자료를 통해 헌종의 죽음이 당시 조선사회에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알 수 있고, 아울러 자줏빛 수정이라고 하는 자석영(紫石英)이 당시에 약재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응와 이원조의 삶과 학문』, 경상북도대학교 퇴계연구소, 역락, 2006.
「凝窩先生年譜」, 이원조, 『凝窩全集』, 여강출판사, 1986
1차 집필자: 황동권 , 2차 집필자 : 김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