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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 김기현(金箕絢)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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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기현, 이원조
작성시기 1849
형태사항 크기: 32.5 X 4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대학교 박물관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안내정보

1849년 김기현(金箕絢) 서간(書簡)
헌종(憲宗, 1827~1849)의 죽음 때문에 마음이 괴롭다고 하였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때에 관직생활은 괜찮은지 묻고, 자신은 여름 감기가 들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당신이 보내준 자석영(紫石英)을 약재로 요긴하게 사용했다는 추신이 있다.
『응와 이원조의 삶과 학문』, 경상북도대학교 퇴계연구소, 역락, 2006.
「凝窩先生年譜」, 이원조, 『凝窩全集』, 여강출판사, 1986
1차 집필자: 황동권 , 2차 집필자 : 김상환

상세정보

1849년(헌종15) 6월14일, 대구광역시 판관(大邱判官)김기현(金箕絢)경주 부윤(慶州府尹)으로 재직 중인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안부서신으로, 무더위에 관직생활은 괜찮은지를 묻고, 자신은 여름 감기로 고생을 한다는 내용.
내용 및 특징
1849년(헌종15) 6월 14일, 대구광역시 판관(大邱判官)김기현(金箕絢)경주 부윤(慶州府尹)으로 재직 중인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에게 보낸 안부서신이다. 『일성록』1816년 12월 23일 기사를 보면, 그는 1846년 12월 23일에 대구광역시 판관에 제수되었다가, 1849년 6월 18일 다시 상주 목사(尙州牧使)에 제수 되었다. 그리고 피봉에 ‘月城 政閣 執事’라고 표기하였다. 월성(月城)경주(慶州)의 옛 이름이다. 당시 이원조경주 부윤(慶州府尹)으로 재직 중이었기 때문에 수취자는 이원조이다. 백성들이 복이 없이 때문에 헌종(憲宗, 1827~1849)께서 승하 하셨으니, 자신은 천지가 어둡고 마음이 무너져 위로할 말이 없다고 하였다. 헌종1849년(헌종15) 6월에 23세의 젊은 나이로 외척들의 세도정치 속에서 왕권강화를 이루지 못하고 요절하였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때에 관직생활은 괜찮은지 등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여름 감기가 들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당신이 보내준 자석영(紫石英)을 약재로 요긴하게 썼다고 감사인사를 올리는 추신이 있다.
자료적 가치
간찰(簡札)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계층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 내용은 자신의 감정이나 사고 등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어서 인간사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이 자료를 통해 헌종의 죽음이 당시 조선사회에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알 수 있고, 아울러 자줏빛 수정이라고 하는 자석영(紫石英)이 당시에 약재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응와 이원조의 삶과 학문』, 경상북도대학교 퇴계연구소, 역락, 2006.
「凝窩先生年譜」, 이원조, 『凝窩全集』, 여강출판사, 1986
1차 집필자: 황동권 , 2차 집필자 : 김상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49년 김기현(金箕絢) 서간(書簡)

[피봉]
수신, 月城 政閣 執事
발신, 達判謝狀

[본문]
臣民無祿
大行大王昇遐 天地晦冥 五內
崩剝 無辭相慰也
惠狀 日昨承拜 而神精飛越
未卽修謝 想蒙
恕諒 而悵悚則切 大火翕赫
如坐甑中 伏惟日來
令政體連護萬重 旋庸仰
慮 無任勞祝 記下 間患暑感
餘祟尙爾 而此時何敢言病
耶 餘萬哀遑 姑不備 伏惟
令下照 謹謝上

己酉六月十四日 記下 金箕絢 拜

惠送紫石英 緊於藥用 非時
求惠 其所感泐 非直在物 罔知所
以攸謝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