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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 이공우(李恭愚)가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서찰.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A01+KSM-XF.1848.0000-20090831.E47840226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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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공우, 이원조
작성시기 1848
형태사항 크기: 39.5 X 49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대학교 박물관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안내정보

1848년 이공우(李恭愚)가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서찰.
1848년(헌종 14)이공우(李恭愚)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전한 서찰에 첨부된 별지로, 폐송조(弊送条)에 관하여 잘 처리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凝窩 李源祚 先生 生平事蹟考」, 이세동, 『동방한문학12집』,동방한문학회, 1996
1차 집필자 : 박상수, 2차 집필자 : 김상환

상세정보

1848년(헌종 14)이공우(李恭愚)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첨향미(添餉米)와 경식전(輕殖錢)에 관한 소식을 전한 서찰.
내용 및 특징
1848년(헌종 14)이공우(李恭愚)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첨향미(添餉米)와 경식전(輕殖錢)에 관한 소식을 전한 서찰이다. 지난번 만났을 때는 너무 바빠 서운하였는데 곧바로 상대가 보내준 서찰을 받고 눈 온 뒤 정사(政事)하시며 잘 지내신다는 것을 알고는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다. 자신은 전과 다름없이 지내고 있어 더 전할 말은 없고 상대가 전한 말은 모두 잘 알았다고 하였다. 첨향미(添餉米 : 기준보다 더 많은 군량미)가 관(官)으로 들어 온 것이 6백석 밖에 되지 않아 수 일전에 이미 저울에 달고 직접 받아 올렸는데 아직은 받아 보지 못하였을 것이라고 하였다. 또 순천(順川)은산(殷山)으로 질러간다고 하는데 원하지 않아 우선은 알려오지 않았다고 하였다. 경식전(輕殖錢)를 환납(還納)하는 일은 다만 도모하기는 하지만 나누어 줄 곳이 없어 고민이라고 하였다. 『왕조실록(王朝實錄)』고종 2년에 좌찬성김병기(金炳冀)가 관서 지방의 첨향(添餉)과 경식(輕殖)이 백성들의 고질적 폐단임을 상소한 것으로 보아, 당시에도 이러한 제도는 백성들에게 상당한 민폐 중의 하나였음을 알 수가 있다.
자료적 가치
이 간찰을 통해 이공우(李恭愚)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당시 첨향미(添餉米)와 경식전(輕殖錢)에 관하여 수탈의 대상이 되는 백성들과는 달리 관료들의 일반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이원조, 『凝窩全集』,여강출판사, 1986
「凝窩 李源祚 先生 生平事蹟考」, 이세동, 『동방한문학12집』,동방한문학회, 1996
「凝窩 李源祚 先生 生平事蹟考」, 전용신, 『韓國古地名辭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93
1차 집필자 : 박상수, 2차 집필자 : 김상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48년 이공우(李恭愚)가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서찰.

成川如伶 弊送? 三分之二 已爲
收刷餘 校不日內可畢 不勝豁然
畢捧復 卽爲下
示伏望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