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3년(헌종9) 9월 21일 인제(婚弟) 조술립(趙述立)이 대포(大浦)의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로,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또다시 한양으로 가려고 하느냐고 질책하고, 수다사(水多寺)에사 만나 자신의 선조 문집을 교정하자고 제의하는 내용.
내용 및 특징
1843년(헌종9) 9월 21일 인제(婚弟) 조술립(趙述立)이 대포(大浦)의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이다.
3년에 한번 만난 것도 관아에서 잠시 만났을 뿐이니, 연분이 없는 것이 이와 같아서 스스로 홀로 서글프게 돌아오니, 오히려 몸에 병이 낫지 않은 것 같은 심정임을 밝히고, 공사(公私)로 응대하는 것이 언제 진정되어 거문고와 서책의 옛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을지를 걱정하였다. 아직도 직무를 벋어나지 못하여 한양으로 가려고 하느냐고 되묻고 가내의 가족들은 모두 예전같이 편안한지 안부를 다시 들려달라고 하였다.
인제(姻弟)는 한번 밖에 나간 것이 문득 여러 병을 얻어 폐물이 되었으나 영원히 폐물이 되기는 싫으며, 또 이러한 대살시(大煞時)에 몸을 어루만지며 홀로 슬퍼하고 탄식할 뿐임을 토로하고, 집안 가득히 신음하고 있는 것이 흡사 병화(兵火)의 남은 열기와 같아 안주(安住)하지 못하게 하니, 마침내 고인(古人)이 옥성(玉成)에 비유한 것이 속유(俗儒:자신의 비유)같은 노둔한자를 위하여 가설한 것이 아님을 언급하였다.
선고(先稿)는 원집(原集)과 속집(續集)을 막론하고 모두 연좌되어 두서없이 없어졌으니 참으로 운수가 사나운 것 같으나, 이 또한 핑계로 하는 말이니 마땅히 슬퍼할 뿐임을 실토하고, 언제 상대방과 안온한 자리를 마련하여 마주대하고 선고(先稿)도 읽으며 산처럼 쌓인 회포를 풀 수 있을지 붓으로는 다하기 어려움을 전하면서, 조만간에 한양의 행차는 반드시 좋은 약속이 있을 것이니 다시 한온하게 하룻밤의 대화를 나눌 것을 제의하였다.
간(榦)아이는 한번 나아가 뵙는 정의(情義)를 그만둘 수 없으나 억지로 발섭(跋涉)하는 것이 염려되니 덮어서 비호해주기를 기대하고, 말(馬)은 이미 반쯤 허락을 받았으니 그 아이가 돌아올 때에 조랑말 한 마리를 보내주어 병든 자신이 점지(占地)할 풍수사를 맞이하여 부득이한 인사(人事)를 닦고 이어서 큰일을 경영할 수 있기를 기대하였다.
와룡(臥龍)의 유생가(柳生家)를 운운하던 일은 사람들 속에 바쁜 나머지 과연 잊어버리지는 않았는지를 묻고, 다시 시응(時應)과 천칙(天則)등 여러 친구들을 독촉하라고 권하고 남은 사연은 붓으로는 다할 수 없음을 밝혔다.
추신으로 조만간에 선산(善山)의 수다사(水多寺)에서 묵으려고 하며 수다사와 안곡역(安谷驛)과의 거리는 5리에 불과하니, 수레가 만약 안곡역에 이르면 역지기인 이초득(李草得)을 시켜 자신에게 연락할 것을 당부하고, 집 아이가 매원(梅院)으로 간 것은 인사를 위한 것만을 위한 것이 아니니 그로 하여금 이룰 수 있게 도와줄 것을 부탁하였다.
자료적 가치
이 시기는 이원조(李源祚)가 7월에 제주목사를 사직하는 글을 올리고, 윤7월에 한양에 들어가 부절을 되돌려 드리고, 8월에 성묘할 일로 휴가를 얻어 잠시 고향에 돌아와 있던 기간인데, 친인척들이 이원조가 제주에서 돌아올 날을 기다렸음을 알 수 있으며, 돌아오자마자 여러 일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것을 보면 집안에서 그에게 거는 기대가 얼마만한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응와집』에 실려 있는 조술립과 관련된 시는 다음과 같다.
神光寺 與趙弘濟[述立]校梅隱集[二首]
當日蒙衝艤水涯 法門衰敗奈今何 餘生浪走紅塵路 古道猶傳墨帳家
發篋怳如供灑掃 聯床未暇和詩歌 初心道德思塡補 更向源頭着眼過
今行非是學禪虛 靜坐要看未發初 省事支林猶愛駿 放言蒙叟亦忘魚
經旨更尋梳洗後 人情多見別離餘 坡翁高處君知否 碁酒尋常讓不如
輓趙弘濟
記昔拜梅師 金聲動墨帷 持躬合榘矱 講理析毫絲
函筵詩禮問 甥館起居隨 憐我嬰紳笏 欽君拈拂鎚
才豐命獨嗇 心困迹逾畸 言議窮冞確 文章老益奇
閒雲雖未出 朗月輒相思 屬我懸車晩 怪君命駕遲
秋風撼老木 落日翳疏籬 一哭不成聲 餘生寧久歧
無由白馬赴 抆涕寄哀辭
「凝窩先生年譜」, 『凝窩全集』, 이원조, 여강출판사, 1986
1차 집필자: 심수철 , 2차 집필자 : 김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