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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2년 서영순(徐英淳)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A01+KSM-XF.1842.0000-20090831.E47840267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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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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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서영순, 이원조
작성시기 1842
형태사항 크기: 38 X 52.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대학교 박물관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안내정보

1842년 서영순(徐英淳)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
상대의 안부와 자신의 근황을 전하며, 아울러 김재유(金載瑜)부이방(副吏房)에 합당한 사람이니, 어려운 단서가 있더라도 아전으로 차출해 달라는 내용. 서두에서도 계절 감각과 상대가 거주하는 위치 등을 살려 정감있게 표현하였다. 일생동안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해결할 만한 직장을 구한다는 것은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예전에도 아는 사람끼리 서로 직장을 부탁하는 사례가 이렇게 많았던 사실을 볼 수 있다.
「凝窩先生年譜」, 이원조, 『凝窩全集』, 여강출판사, 1986
「凝窩 李源祚 先生 生平事蹟考」, 이세동, 『동방한문학12집』, 동방한문학회, 1996
1차 집필자: 황동권 , 2차 집필자 : 김상환

상세정보

1842년(헌종8) 4월 25일, 기복제(朞服弟) 서영순(徐英淳)영주목백(瀛洲牧伯:제주목사)으로 재직 중인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에게 영리(營吏)김재유(金載瑜)부이방(副吏房)에 합당한 인물이니, 아전으로 차출해 줄 것을 바라는 인사 청탁의 간찰이다.
내용 및 특징
1842년(헌종 8) 4월 25일, 기복제(朞服弟) 서영순(徐英淳)영주목백(瀛洲牧伯:제주목사)으로 제직중인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이다. 서영순은 무더운 날씨에 잘 계신지를 묻고, 바다와 산으로 막혀있어 그리운 마음이 한층 더한다고 하였다. 봄철 능행(陵幸)을 맞이하여 허다한 거행(擧行) 때문에 날로 수염과 머리가 다 하얗게 되었다고 하소연한다. 그리고 향관(享官:祭官)의 역할과 주려(周廬)에서 숙직은 형세가 앞으로도 빡빡하게 겹칠 것이니 어찌 답답하지 않겠냐고 빡빡한 공무로 인한 괴로운 심정을 피력하였다. 영리(營吏)김재유(金載瑜)는 부지런하고 신실(信實)하여 수임(首任)에 부합될 것이라고 전한다. 그리고 부이방(副吏房)에는 김재유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며 그를 추천하였다. 또한 그는 천리 떨어진 곳에서 매달리며 바라는 뜻을 외롭지 않게 해달라고 하였다. 아울러 처리하기 어려운 단서가 있겠으나, 모두 물리치시어 꼭 김재유아전으로 차출하여 달라고 거듭 당부하였다.
자료적 가치
이 간찰에서 발신자 서영순(徐英淳)김재유(金載瑜)라는 아전이원조(李源祚)에게 소개하고 있다. 사람을 누군가에게 소개하는 일은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다. 그러나 이 간찰에서 서영순은 매우 적극적으로 선발해 줄 것을 언급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고인들의 인사 청탁과 관련된 구체적 사례와 그 형식 등을 살펴볼 수 있다.
「凝窩先生年譜」, 이원조, 『凝窩全集』, 여강출판사, 1986
이세동, 「凝窩 李源祚 先生 生平事蹟考」, 『동방한문학12집』, 동방한문학회, 1996
1차 집필자: 황동권 , 2차 집필자 : 김상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42년 서영순(徐英淳)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간찰.

[피봉]
수신, 瀛洲 牧伯 令執事 [花押] 謹封
발신, 肅 謹拜候上

[본문]
麥風乍凉 暵炎太甚 此時熲
迬 尤覺海山之脩阻 未審邇

令政體動止 連護崇毖 區區
溯祝 賑政旣究實惠 稼功庶
畢出耘 此際費神 殊用拱念
弟春當
陵幸 許多擧行 白盡鬚髮 旋
卸解 歸臥故廬 得遂初服
雖云幸矣 而享官之役 周廬>
直 勢將稠疊 豈不可悶 惟喜親

候粗寧耳 就營吏金載瑜
旣有臨行書托 向於謝

候 亦以更當專告之意
仰提矣 想或記有 而庶
諒其緊切之狀
倘有另眷 而
未知果爾否
金吏之勤信可使
業已悉陳 第其
所負 實合首任矣 今聞副吏房
尙無所定行 將差出云 苟
求其人 無出此右也 且以弟之多
年親切下人 而未得此任於
令公 則其可曰 當然底事
耶 近來吏輩 攀援之習
無處無之 而惟視權衡稱
停者 卽俗尙也 仰認
令公不用此套 故玆有申復
懃乞 幸須黙諒 無孤此千
里懸望之意 如何如何 雖有
些少難處之端 一切擺却
必以此吏差出 千萬千萬 更望速
賜敎示之耳 姑留不備 謹
候上
壬寅四月卄五日 朞服弟
徐英淳